삶의 얘기

가장의 수모

말까시 2015. 4. 21. 09:44

 


◇  가장의 수모 

 

벚꽃 개나리가 소리 없이 사라졌다. 목련꽃도 지고 가지에 새싹이 돋아나고 있다. 산은 푸른 옷으로 빠르게 갈아입고 들판은 파종하느라 정신이 없다.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언덕에 무리지어 노니는 강아지들이 신났다. 담벼락에서 졸고 있는 길고양이는 통통하게 살이 올라 부러울 것이 없어 보인다. 모처럼 맑은 날 새벽부터 새소리가 요란하다.  

 

어제는 월급통장에 돈이 들어오는 날이다. 잠시 머물렀다 가는 통장이지만 왠지 기분이 좋다. 땀 흘려 번 돈으로 가족을 먹여 살리고 아이들 학비에 보태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있겠는가. 많지는 않지만 항상 고마움을 느낀다. 일할 수 있고 기거 할 수 있는 가정이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은 모자람이 없다. 작은 것이라도 고마움을 느끼고 욕심 없이 살다 보면 행복은 내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사무실에 출근하자마자 바로 이체했다. 조금만 늦어도 카톡이 불이난다. 기왕 보내는 것 서둘러 보내면 받아보는 아내는 흡족해 할 것이다. 자판 몇 개만 두드리면 바로 송금을 할 수 있으니 참 좋은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채 성공이란 메시지를 확인하고 은행싸이트를 빠져 나왔다.

 

이런 젠장, 점심때가 되어도 고맙다는 문자하나 없다. 당연한 것으로 간주를 하는 것인지, 머리가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한 달 내내 새벽같이 출근하여 별보고 들어와 쪽잠을 자고는 또 나가야 하는 고달픈 노력 끝에 손에 죈 거금을 보냈건만 일언반구도 없으니 서운함이 하늘을 찌른다. 퇴근 무렵까지 깜깜 무소식이다.

 

"월급날인데 해물 찜에 한잔해야 하는 것 아니야" 분을 삭이며 문자를 날렸다. 한참 후에 드르륵 신호가 왔다. "또 외식이야! 쌀찐다고, 아이들이 오케이 하면 가지 뭐" 어이가 없었다. 나보다 아이들의 서열이 위라고 생각하는 아내는 간덩이가 부어도 이만저만 부은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아! 어쩜 이럴 수가 있을까. 남자의 권위가 추락했다고는 하나 이렇게 까지 곤두박질 할 줄 몰랐다. 격한 감정을 추스르고 서둘러 귀가를 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아내는 이미 와 있었다.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던 아내는 나를 보자마자 그냥 집에서 먹자고 한다. 아직도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는 아내는 도대체 이성이 있는 사람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바빠도 고맙다는 카톡 한 번 못하나” 언짢았던 기분을 아내의 얼굴에 마구 퍼 부었다. “미안, 내가 바쁘다 보니 미쳐 생각이 좁았네. 갑시다. 가자고 해물찜 사줄 테니” 엎드려 절 받는 격이다.  

 

식당 안에는 가족단위로 온 손님들로 시끌벅적했다. 탁자마다 소주병은 기본이었다. 막걸리를 마시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 역시 소주 한 병을 시켰다. “잔은 몇 개 드릴 까요” 물음에 하나만 달라고 했다. “뭐야! 아무리 맹물파라고 해도 권해보는 것이 미덕이지 않나” 바로 공격이 들어왔다. “그렇구나. 못 먹어도 일단 딸아 주어야 하는 구나” 센스 있는 종업원은 두 개의 잔을 갖다 주었다. 아내는 병아리 오줌 만큼 마시고 나서 금쪽같은 돈 소중히 쓰겠노라고 고마움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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