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얘기

장어의 효과는 언제 나타날 것인가.

말까시 2015. 5. 4. 15:15

 

◇ 장어의 맛은 우리가족을 실망시키지 않았습니다.

아들과 약속한 장어 먹는 날이 다가왔습니다. 주말, 아내는 자전거 동호회에 참석하기 위해 새벽부터 부산을 떨었습니다. 취업준비에 여념이 없는 딸내미는 학원에 간다며 태워 달라 합디다. 어쩌겠습니까. 열심히 공부한다고 데려다 달라는 딸내미의 부탁을 거절 할 수 없었습니다. 아침밥을 대충 때우고 한산한 도심을 달려 학원가에 내려다 주었습니다. 주 오일근무라 그런지 거리가 한산했습니다. 학원가에 갔다 오는데 십분도 걸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장어를 구울 알불입니다.

 

집에 도착해보니 아내는 사라지고 없었고 아들은 꿈나라에서 아직 깨어 나오지 못했습니다. 목이 타더군요. 냉장고를 열어 냉수를 한 모금 마시고, 사과 하나를 깎아 맛있게 먹었습니다. 해가 중천에 올랐음에도 아들은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네요. 재수하는 학생이 저렇게 잠이 많아서 어쩌려고 하나, 내심 걱정이 앞섰습니다.

자전거동호회에 갔던 아내가 늦으막히 귀가 했습니다. 다행히 장어 먹기로 한 시간보다 좀 일찍 들어왔습니다. 아들놈은 아내를 보더니 장어 먹기로 한 것을 다시 한 번 상기 시켜 다짐을 받고는 나에게 확인 사살을 했습니다.

아내와 아들을 태우고 딸내미와 만나기로 한 약속장소에 가보니 이미 와 있었습니다. 하얀불라우스에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있는 딸내미는 귀구멍에 이어폰을 꽂고 무엇인가 열심히 듣고 있었습니다. 우리를 보더니만 헤헤 웃더군요. 딸내미 역시 장어 먹을 것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나 봅니다.

 

노릇노릇 익어가는 장어입니다.

 

아직 어둠이 내리려면 좀 있어야 될 것 같습니다. 해가 많이 길어졌습니다. 수락산 청학리로 달리는 길 양 옆에는 철쭉이 만발하여 반겨 주었고, 수락산의 진녹색은 눈을 시원하게 했습니다. 가는 길마다 즐비하게 늘어선 식당에는 많은 차들이 주차해 있었습니다. 유원지답게 젊은 청춘들도 많았습니다.

드디어 장어맛집에 도착했습니다. 구수한 장어냄새가 코끝을 자극했습니다. 숯불에서 나온 연기가 홀 안을 자욱하게 덮고 있더군요. 콜록콜록 기침이 나왔습니다. 건물 뒤쪽에 마련된 야외 테이블로 가서 앉았습니다. 상큼한 바람이 마구 쏟아져 들어 왔습니다. 개울가에는 물이 흐르고 그 안에 물오리가 물질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아이들은 신기하다는 듯 그곳을 한동안 주시 했습니다.

주문하자마자 장어가 나오고 바로 이어 밑반찬이 나왔습니다. 미리 준비 한 듯 종업원은 손발이 척척 맞았습니다. 노릇노릇 익어가는 장어를 바라보자마자 입안에 침이 고이기 시작했습니다. 고추냉이를 간장에 듬뿍 풀었습니다. 채 썬 생강의 향이 아주 좋았습니다. 장어 한 점에 간장을 찍어 생강과 함께 입안에 넣자마자 살살 녹았습니다. 순식간에 장어 한판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추가 주문을 해야 했습니다.

 

△ 야외에 마련된 식탁 운치 있어 좋았습니다.

 

센스 있는 종업원은 나와 아들에게 꼬리 부분을 밀어주었습니다. 꼬리가 남자에게 좋다는 것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냉큼 먹을 순 없었습니다. 멈칫거리는 아내는 얼른 잡수셔 하고는 양보를 했습니다. 딸내미는 아무 생각이 없는 듯 살점을 마구 집어넣었습니다. 아들은 무엇인가 감지 한 듯 꼬리를 맛있게 먹었습니다. 오랜만에 포식했습니다. 분위기가 좋았다며 가끔 동네를 떠나 운치 있는 곳에서 외식을 하자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딸내미는 룰루랄라 발걸음이 경쾌했습니다. 과연 장어의 효과는 언제 나타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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