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얘기

이놈들아 장어 먹고 힘 좀 내라.

말까시 2015. 4. 28. 10:31

◇ 이놈들아! 장어 먹고 힘 좀 내라.

연일 쏟아지는 햇볕에 푸름은 빠르게 산을 덮고 있다. 땅에서 올라오는 기운은 줄기를 튼튼하게 하고 모세관은 나뭇잎 끝까지 영양분을 전달한다. 그늘이 만들어 지기 시작했다. 그만큼 잎들이 면적을 넓혀가고 있다는 증거다. 하천엔 날파리들이 극성을 부린다. 작은 벌레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산책하는 사람들은 벌레를 쫒고자 손사래를 친다. 연녹색이 점령한 산과 들은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신록의 계절 오월이 다가오면서 생명체에 힘을 불어 넣고 있다.

우리 집 재무담당 이사께서는 잡무처리로 늦는다면서 아이들과 맛있는 저녁을 해 잡수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짜증나는 일이다. 요즘 부쩍 귀가 시간이 늦어지고 있다. 직장인들이 땡하고 퇴근 할 수 없다는 것 이해하지만 그것이 잦다 보니 기분이 좋지 않다. 스스로 챙겨 먹는 습관이 있는 아이들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지만 마음이 편치 않다는 것을 표정으로 느낄 수 있다. 맞벌이로서 이해를 하는 편이지만 횟수가 거듭되다 보니 미워진다.

나의 애마 자전거를 타고 사무실을 나섰다. 날씨가 풀려서인지 자전거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약간 썰렁하다는 느낌이었지만 페달을 밟을수록 가슴이 뜨거워지고 목덜미에 땀이 흐른다. 바람을 가르고 달려 도착해보니 아이들이 반갑게 맞이 해준다. 집 밥을 먹을까 하다가 외식을 하기로 했다. 딸내미는 배가 부르다며 나서지 않았다.

무엇을 먹을까 고민 중에 있는데 아들이 뼈다귀 탕을 먹자고 한다. 순댓국집에 뼈다귀 탕이 새로운 메뉴로 등장했다며 입맛을 다시고 있는 아들은 몹시 시장기를 느끼는 것 같았다. 식당에는 빈자리가 많았다. 예전엔 줄을 서서 먹던 곳이었는데 무엇이 문제길레 이렇게 손님이 없을까. 일단 자리에 앉고 주문했다. 아쁠사, 뼈다귀 탕은 재료가 떨어져 안 된다는 것이다. 실망한 아들은 순댓국을 먹는 내내 표정이 굳어있었다.

재수하는 아들은 갈팡질팡 마음을 잡지 못하고 있다. 도서관에도 안가고 하루 종일 집에만 있다. 낮에는 주무시고 올빼미처럼 밤에만 활동하는 아들은 새벽에 TV를 시청하는 모습도 보인다. 제 엄마는 안달이 났다. 잔소리를 늘어놓지만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아들이 미워 죽겠다며 한숨을 내쉬곤 한다. 그런 아내에게 날 잡아 아들과 여행을 다녀오면 어떠냐고 했지만 내키지 않는 듯 반응이 없다.

“요즘 많이 힘들지. 금년도 벌써 반이나 지나갔다. 이제 분발을 해야 하지 않겠니. 마음이 잡히지 않으면 나하고 바람 좀 쐬러 가자. 동해바닷가 두어 시간 남짓 달리면 갈 수 있어. 모래사장을 걸으며 바닷바람 쏘이고 회 한사라 먹고 나면 기분이 달라질 거야. 답답한 마음 끌어 앉고 있으면 점점 초조해지고 공부는 더 하기 싫은 법이야. 주말에 가보자. 동해바다로.”

아들은 시큰둥하며 고개를 흔든다. “대나무 숲이 우거진 담양에 가면 어떨까” 어렸을 때 간 기억이 있다. 그곳의 추억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거긴 넘 멀지 않나. 하루는 어려워. 이틀은 잡아야해” 멈칫하더니만 “그럼 예전에 수락산 밑에 장어 집 있잖아 그것 먹으로 가자” 아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아들과 나는 의기투합 주말에 장어를 먹기로 했다. 고소한 장어를 먹고 힘을 얻어 공부에 열중하면 얼마나 좋을까. 요즘 우리 집에는 무소속이 두 명이나 있다. 취업준비에 여념이 없는 딸과 재수하는 아들놈이다. ‘이놈들아 장어 먹고 힘 좀 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