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까시의 추억

오솔길

말까시 2014. 8. 5. 11:29

 

 

남쪽 지방을 강타한 태풍 ‘나크리’도 사라졌다. 시도 때도 없이 내리는 여름비, 기이한 일이 아니다. 장대비가 내렸다가 해가 나고 다시 가랑비가 흩날려도 나쁘지 않다. 생명의 물이라 생각하면 고마울 따름이다. 그 덕에 산과 들은 푸름이 넘쳐나 빈틈이 없다. 좁은 공간이라도 비집고 들어가 싹을 틔어 꽃을 피우고 씨를 만들어 날린다. 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 옆 측구 틈바구니도 잡초가 자라고 있다. 대단한 생명력에 경의를 표한다.

 

태풍이 오면 비바람이 몰아친다. 아름드리나무도 뿌리 채 뽑혀 자빠진다. 하천제방이 무너지고 도로가 유실되어 고립되는 마을이 늘어난다. 지붕이 날아가 물이 새는 경우도 있다. 비닐하우스도 찢기어 농작물을 초토화 시킨다. 키가 큰 옥수수뿐만 아니라 벼이삭도 주저앉혀 소출을 반으로 줄어들게 한다. 오솔길 역시 온전할 리가 없다. 자연의 힘 앞에 인간은 나약한 존재이지만 이를 극복하는 지혜는 남다르다.  

 

예로부터 마을은 배산임수의 땅에 자리를 잡았다. 마을 뒤쪽에 산이 있어 추위를 막아주고 앞에 물이 있어 농사짓기 좋은 그런 곳에 마을이 들어선 것이다. 농경사회이다 보니 모든 것을 자급자족해야했다. 식량도 중요하지만 연료를 구하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간단한 식사를 위한 땔감은 농작물을 수확하고 남은 콩대, 밀집, 볏짚을 이용했다. 하지만 잔치를 벌이기위해서는 많은 땔감이 필요했다. 산에 올라 나무를 해오지 않으면 안 된다. 이렇게 나무꾼이 다니던 길이 오솔길이다.

 

지게를 짊어지고 가는 길은 경사도가 급하면 이동하기가 쉽지 않다. 일정한 경사도를 유지하여 길을 내다보니 구불구불 춤을 춘다. 수많은 나무꾼과 산나물채취를 위한 아낙들의 발걸음에 풀 한포기 자랄 수 없는 맨땅으로 변한다. 아이들 역시 산딸기, 산밤, 칡을 채취하기 위해 오솔길을 오른다. 오솔길과 오솔길이 연결되어 재를 넘으면 이웃동네를 갈수 있는 통로가 된다. 오솔길이 모이다보니 대로가 만들어지고 대도시로 나가는 길이 된 것이다.  

 

새마을 사업이 시작되면서 나무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무분별한 벌채를 금하여 황폐해가는 민둥산을 녹화하기 위한 방책이다. 연탄이 보급되어 난방과 취사에 어려움 없어지자 나무하는 사람들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격동의 세월 정부시책에 반하여 몰래 나무를 하다 붙잡히면 곤혹을 치러야 한다. 관가의 위세가 하늘을 찌르던 시절 순박한 농민들은 고분고분 말을 잘 들었다.

 

사람이 다니지 않는 오솔길은 숲이 우거져 흔적조차 없다. 그 자리는 야생동물의 천국이 되었다. 오소리. 고라니. 멧돼지가 제상인양 날뛴다. 개체수가 늘다보니 마을까지 내려와 닥치는 대로 짓이겨버린다. 새들이 쪼아 먹고 짐승들이 갉아 먹어 농작물피해가 이만저만 아니다. 울타리를 치고 그물을 드리워도 용케 들어와 농작물을 해친다. 야생동식물을 잡고 채취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함에 따라 개체 수는 빠르게 늘어만 간다. 뒷동산에 조금만 올라가도 살이 통통하게 오른 고라니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굽이굽이 휘어진 오솔길은 등산로가 되어 새롭게 탄생했다. 나무가 베어지고 안전을 위한 사다리가 놓이고 난간이 설치되어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낭만은 없다. 뒷동산 역시 둘레길이라 하여 마을 어귀까지 파 해쳐 길을 만들었다. 외지인의 접근이 수월해지자 남아나는 것이 없다. 봄철 한때 재취하여 아들딸들에게 보냈던 산나물 귀경도 어렵게 되었다. 검정고무신을 신고 마구 뛰어 올랐던 오솔길, 엄마 아빠가 등짐을 지고 아슬아슬 걸었던 오솔길,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었다. 

 



 

'말까시의 추억'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방위의 설움  (0) 2014.10.08
도장을 잘못 찍어 날아온 재봉틀  (0) 2014.08.07
고샅  (0) 2014.07.18
확독  (0) 2014.07.17
원두막  (0) 2014.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