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까시의 추억

확독

말까시 2014. 7. 17. 17:32

 


◇ 확독                                      

 

김장김치가 물릴 무렵이면 봄나물이 나와 입맛을 돋게 한다. 나물이 시들해지면 본격적인 밭 채소가 나온다. 그 대표적인 것이 상추다. 상추는 겉절이도 만들어 먹지만 대부분 고기를 싸먹는 쌈 채소로 소비된다. 상추가 키 자랑을 할 때면 열무나 얼갈이도 뿌리를 내리고 잎을 키워낸다. 열무나 얼갈이는 물김치로 담으면 시원하게 먹을 수 있어 여름김치로 으뜸이다. 김치를 담기 위해서는 양념을 만들어야 하는데 믹서기가 없던 시절 고추와 마늘, 생강을 가는데 확독이 쓰였다. 

 

 

 

<시골 폐가에 방치된 절구겸 확독>

 

 

확독은 절구와 함께 음식을 만드는데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주방기구다. 절구통이야 나무를 잘라 속을 파내면 금방 만들 수 있지만, 확독은 그야말로 하나를 완성하기까지 여간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주변에 커다란 돌이 있어야만 만들 수 있는 확독은 부잣집이 아니고서는 감히 탐낼 수 없는 보물과도 같은 것이다. 커다란 바위를 구해 몇날 며칠 망치질을 해야 하는 확독은 여럿장정이 돌아가며 정으로 쪼아 속을 파고 다듬어야 완성할 수 있는 힘든 작업이다.  

 

믹서기 칼날 작용을 하는 것은 주먹보다 약간 큰 돌멩이가 이용되었다. 하천에 가면 오랜 세월 구르고 글러 표면이 매끄러운 곱돌이 있다. 약간 타원형으로 생긴 돌을 주어 손에 쥐어보고 작업하기 용이한 돌을 주어오면 된다. 정이 지나간 자리는 거칠어 물을 붓고 표면이 오돌토돌 할 때 까지 갈아내야 한다. 돌가루를 헹구어 내면 드디어 곡식이나 양념을 갈수 있는 확독이 탄생하게 된다.  

 

엄마는 열무를 다듬어 소금을 뿌려 절여지는 동안 고추를 다듬어 마늘과 생강을 확독에 갈아 양념을 만들었다. 바쁜 여름날 풀을 끓여 넣을 수 있는 여력이 없다. 찬밥을 한주먹 곱게 갈아 넣으면 감칠맛 나는 열무김치를 만들 수 있다. 그렇게 만든 열무김치는 항아리에 담아 줄을 매달아 우물 속에 저장했다. 냉장고가 없었던 시절 우물은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여 쉽게 쉬어버리는 막을 수 있다. 

 

방앗간이 보편화 되지 않았을 때 콩가루나 쌀가루를 만드는데도 확독이 쓰였다. 콩이나 쌀을 물에 불려 부드럽게 한 다음 확독에 넣고 갈면 쉽게 으깨어져 가루가 된다. 잘 갈아진 곡식을 채에 걸러 거친 것을 골라 다시 갈기를 반복하면 고운 가루를 얻을 수 있다. 쌀가루는 떡을 만들어 먹었고 콩가루는 밥을 비벼먹기도 하고 인절미를 만드는데 사용되었다. 곱돌을 오래 사용하다보면 작아져 교체해야 한다. 곱돌이야 쉽게 구할 수 있어 확독 옆에는 늘 서너 개씩 있었다.  

 

문명이 발달하여 순식간에 갈아 마실 수 있는 믹서기가 나와 주부들의 일손을 덜었다. 고속으로 돌아가는 칼날에 아무리 단단한 곡식이라도 안개처럼 갈아내는 믹서기는 편리함은 있지만 영양소를 파괴하는 나쁜 점이 있다. 태곳적부터 이어져 내려온 확독을 보기란 쉽지 않다. 만들어 파는 곳도 없다. 만들어 봤자 운반하기가 쉽지 않아 팔리지 않을 것이다.  

 

확독과 믹서기로 만든 양념의 차이는 김치를 담아 보면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연히 확독으로 갈아 만든 김치가 감칠맛을 더한다. 옛것을 좋아 하는 시골 할머니들은 옹기로 만든 확독을 구해 이용한다. 울집도 몇 년 전에 시골옹기점에서 구해와 김치를 담는데 사용했다. 불편하다는 이유로 창고에 처박아 놓은 이후 본적이 없다. 시골 빈집에 방치되어 있는 확독이 탐난다. 운반 할 수만 있다면 옮겨 놓고 싶은 마음 굴뚝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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