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까시의 추억

원두막

말까시 2014. 7. 16. 11:01

 


◇ 원두막 

 

참외와 수박이 넘쳐난다. 길거리에도 마트에도 수북이 쌓여 있는 수박과 참외는 대표적인 여름과일이다. 하우스 재배 덕에 크고 맛있는 과일을 시기보다 빠르게 맛볼 수 있는 것이다. 도심 곳곳에 진을 치고 있는 노점들이 과일장사로 탈바꿈하여 인도를 점령했다. 오가는 사람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커다란 수박과 노랗게 익은 참외가 압도적이다. 단내를 풍기는 참외는 수박보다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봄에 파종을 하여 열매가 열리고 수확하기까지 갖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잡초를 제거하고 비료를 살포하여 탐스럽게 익어 맛볼 수 있는 시기는 방학이 시작되고 한참 후였다. 꽃이 피고 벌ㆍ나비가 날아와 수분이 이루어지면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작은 열매가 주먹만 하게 커지면 원두막을 짓기 시작한다. 밤만 되면 밭고랑을 헤집고 다니며 서리를 하는 도둑들을 지키기 위한 초소인 것이다.  

 

원두막은 밭 가장자리 잘 보이는 언덕배기에 만들어 졌다. 굵은 나무를 잘라다가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만들어 짚으로 덮었다. 원두막에 오르기 위한 사다리도 만들었다. 사방팔방 다 볼 수 있도록 여닫이문을 달았다. 한낮에는 문을 열어 매달았고 밤이나 비바람이 몰아치면 닫았다. 바닥은 짚을 깔고 그 위에 작은 멍석이나 돗자리를 깔았다. 원두막을 지키는 일은 노인들이 도맡아 했다. 한낮이 되면 원두막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졸고 있는 할배들을 볼 수 있다. 서리할 수 있는 적기이다.  

 

청년들은 주로 밤에 서리를 했다. 어두운 밭고랑을 헤집고 다니며 익은 과일을 찾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한 자루 따오면 반은 버려야 하는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다. 조무래기들은 밤에 서리를 할 수가 없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가는 것 자체가 엄두가 나지 않는다. 또한 엄마 아빠 몰래 나간다는 것은 혼날 각오를 해야 한다.  

 

대낮 졸음이 밀려오는 틈을 타서 고개를 숙이고 납작 엎드려 밭고랑을 헤집고 들어간다. 한두 개 잽싸게 따서 줄행랑을 치면 그만이다. 수박은 들고 다니기 쉽지 않아 주로 참외를 서리했다. 냅다 산으로 도망쳐 풀잎으로 닦아 먹으면 꿀맛이다. 설령 할배에게 들켜도 손 사레를 치며 소리를 지를 뿐 잡으려 하지 않았다. 날센돌이 아이들을 잡을 수가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뉘 집 아들인지 알아도 모른 체했다.  

 

참외와 수박은 밭에서 팔았다. 운반수단이라고는 지게밖에 없는 산골에서 읍내로 대다 팔수는 없다. 참외가 익을 무렵이면 맛을 보라고 나누어 준다. 당도가 높은 밭에는 이웃동네까지 소문이 파다해 문전성시를 이룬다. 미리 수확하여 비치하는 경우는 없다. 주문하는 즉시 값에 맞는 참외를 따와 돈과 교환하는 것으로 판매는 끝난다. 돈이 없는 사람들은 보리쌀을 가져왔고, 외상한자는 품을 팔아 갚았다.  

 

여름이 끝날 무렵이면 더 이상 열매가 열리지 않는다. 넝쿨째 갈아엎어 메밀을 심었다. 쓸모없는 원두막은 새끼로 고정하여 접근을 막았다. 그렇다고 자물통을 채우는 원두막은 없었다. 필요하면 언제든지 들어가 쉴 수 있는 곳이다. 비바람을 피하기도 좋다. 처녀총각뿐만 아니라 엄마아빠가 사랑을 나누었던 신성한 곳이기도 하다. 가칠한 보리밭이 모텔이었다면 아늑한 원두막은 칠성급 호텔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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