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까시의 추억

고샅

말까시 2014. 7. 18. 13:44

 


◇ 고샅에 나가 놀아라. 

 

올해장마는 마른장마라 해서 봄비 내리듯 한다. 구름이 드리워져 있다가도 금방 해가 나고 먹구름이 밀려왔으나 이내 사라지는 요상한 날이 계속되고 있다. 지루한 장마가 오지 않아 좋긴 하지만 농사짓는 시골은 물 부족으로 애간장을 태우고 있다. 지하수가 고갈되어 물을 길어다 뿌리고 있는 농부의 가슴은 작열하는 태양만큼이나 뜨겁다. 한줄기 소나기라도 뿌려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다듬어진 고샅 

정겨운 토담과 초가집 


<안동 하회마을>

 

 

장마가 시작되면 들에 나가 일할 수 없다. 아버지는 농기구를 손보고 어머니는 헤진 옷가지를 꿰매는 소일거리로 하루를 보낸다. 아버지들이야 사랑방에 모여 막걸리 잔을 기울이는 즐거움도 있지만 엄마들은 끊임없이 손을 움직여 생산적인 일을 했다. 마구 뛰어 놀아야 하는 아이들이 문제다. 방학이라 하루 종일 집에만 있어야 하는 애들은 괜한 짜증을 낸다. “예야! 비 그쳤다. 고샅에 나가 놀아라.” 잠깐이라도 하늘이 보이면 고샅에 나가 놀았다.  

 

토담으로 연결된 고샅은 아이들의 놀이 터이고 삽작을 드나 들 수 있는 통로다. 마을 어귀부터 이어진 고샅은 골목 끝까지 구불구불 휘어져 이어진다. 외지인이 고샅에 들어서면 경계를 늦출 수 없는 신성불가침영역이다. 누구도 고샅에 들어서는 순간 마을의 법도를 어길 수 없다. 법이 미치지 않는 시골은 최고령어른의 말에 절대 복종했다. 외지인의 행패가 지나치다 싶으면 징을 쳐서 동원령을 내렸다. 혼쭐내어 내 쫒았다.

 

흙길이었지만 풀 한포기 살수 없다. 하루에도 수십 번을 왔다 갔다 하는 발길질에 뿌리를 내릴 수 없었던 것이다. 단단하게 다져진 고샅은 구슬치기, 술래잡기, 딱지치기 등 놀이 문화가 펼쳐졌고 마을잔치가 벌어지기도 했다. 장마로 유실된 곳은 마을사람들을 동원하여 즉시 복구했다. 무수한 삽질로 복구된 고샅은 개들이 뛰어놀고 농사일의 일등공신인 소들이 지나갔다. 이웃집 누나가 시집을 가는 길, 집나갔던 며느리가 돌아오는 길도 고샅이다. 

 

엿장수가 진을 치는 곳도 고샅이다. 코흘리개 주머니를 털어가는 엿장수는 고샅의 사용료를 엿으로 대신했다. 어른들에게 잘못 보이게 되면 얼씬도 못한다. 지나치게 폭리를 취하는 것이 감지되면 가차 없는 벌이 내려진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없어도 상도는 잘 지켜졌다. 가끔 뜨내기장사꾼이 나타나 고가로 사기를 치고 달아나는 되먹지 못한 일 빼고는 고샅의 평화는 잘 유지 되었다.

 

아! 그 정겹던 울타리가 제거되고 토담이 헐리고 말았다. 네모난 시멘트벽돌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골목길 역시 마찬가지다. 질척인다고 포장해 밟는 촉감이 사라졌다. 토담아래 피어오른 분홍 빛 봉숭아, 뾰족한 잎이 자랑인 채송화도 온데간데없다. 비만 오면 나타났던 지렁이도 이사를 갔다. 토담사이 구멍에 둥지를 틀고 살았던 딱새도 없고, 어슬렁어슬렁 구렁이 담 넘어가는 모습도 눈에 띄지 않는다. 골목 깊숙이 차들이 들어서 있고, 축산 농가로 인해 오염된 도랑은 악취가 진동한다.  

 

어디서 고샅을 찾을 수 있을까. 경주 양동마을에도 안동의 하회마을에도 없다. 잘 보존되었다고는 하나 마른날에 먼지가 나지 않고 비오는 날에도 질척이지 않는다. 인위적인 조치가 취해진 이후다. 한 많은 어머니들이 땅을 치고 통곡을 하던 그곳, 이제 가면 언제 올지 모르는 아버지들의 군 입대의 첫 발을 내딛던 그곳, 청운의 꿈을 안고 서울로 떠났던 수많은 청춘들의 발길이 서려 있는 그곳, 우리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고샅은 사라지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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