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까시의 추억

호롱불

말까시 2014. 7. 14. 16:56

 


◇ 호롱불

 

“석유기름 좀 사와라.” 어법상 맞는 말이 아니다. 전기가 들어오기 전에는 집집마다 석유를 이용하여 불을 밝혔다. 전량 수입해서 써야 하는 석유는 귀한 존재였다. 작은 마을에는 기름장사가 없었다. 한참을 걸어 큰 마을에 가야만이 사올 수가 있다. 기름을 받아 올수 있는 용기로는 소주대병을 이용했다. 잘못하다가는 파손되기 쉬워 똑바로 걸어야 한다. 부잣집은 호롱불보다 밝은 빛을 낼 수 있는 호야등(남포등)을 사용했다. 

 

해가 지면 서둘러 집으로 와야 한다. 빛이 없는 어두운 밤에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일손이 딸리면 달밤에 밭을 가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본적이 없다. 어둠이 깔리기 직전에 저녁을 해치우지 않으면 불을 밝혀야한다. 없는 살림에 비싼 돈주고 사온 기름을 펑펑 쓸 수는 없는 것이다. 삼시세끼 굶지 않는 것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시절, 가급적 불을 밝히지 말아야 한 푼이라도 아낄 수가 있는 것이다. 

 

저녁 식사 후 특별한 일 없으면 취침에 들어간다. 엄마는 헤진 양말을 기우기 위해 등잔불 앞에서 안간힘을 썼다. 하루 종일 고단한 일을 한 아버지는 눕자마자 곯아떨어진다. 아이들 역시 산으로 들로 뛰어놀다보니 이불을 피자마자 꿈나라로 간다. 자다가 소변이 마려우면 요강으로 해결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뒷간까지 갈수가 없는 것이다. 마루에 있는 요강까지 가는 것도 조심하지 않으면 비명소리를 들어야 한다. 어두운 밤 비몽사몽 쉬를 하다보면 백이면 백 흘리게 된다. 마루에 오줌이 흥건히 베어 찌른 내가 진동을 했다. 빛이 없어서 벌어진 소동이다.

 

아무리 식구가 많다 해도 안방에서 한 이불을 덮고 잤다. 에너지 절감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아궁이에 불을 지펴 온기를 불어 넣으면 윗방에는 열기가 부족해 금방 식어버린다. 안방에서 커다란이불을 덮고 자면 아침까지 따뜻하게 숙면을 취할 수가 있다. 겨울이 지나고 나면 윗방도 사용했다. 그렇다고 호롱불두개를 밝힐 수는 없다. 안방과 윗방사이에 구멍을 뚫어 그 위에 호롱불을 얹혀 놓았다. 희미한 불빛으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잠시 잠을 자기 전에 담소를 나눌 수 있는 불빛에 불과 했다.

 

살다보면 기름을 살 수 있는 돈이 한 푼도 없는 때가 있다. 오지에서 돈을 만들 수 있는 것은 농작물이 풍성한 가을 한때이다. 십 원 한 장 없는 궁핍한 나날, 먹는 것이야 그럭저럭 해결 했지만 돈을 쥘 수 있는 길은 도둑질 밖에 없다. 사람들은 똑똑했다. 산에 가면 소나무가 있다. 오래된 소나무에는 송진이 흐르는 곳에 관솔이 있다. 관솔은 기름성분이 함유되어 있어 불꽃을 내며 타오른다. 종발에 관솔을 올려놓고 호롱불 대용으로 쓰기도 했다.

 

빛이 없는 어둠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는가. 아이들이야 한번 꿈나라로 떠나면 아침이 되어야 일어난다. 어른들은 다르다. 아무리 고단한 일을 했어도 실컷 잤다 싶어 눈을 떠보면 자정을 넘기기 직전이다. 초저녁부터 잤으니 그럴 만도 하다. 자고 있는 아이들에게 이불을 덮어주는 일 말고는 할 일이 없다. 비싼 호롱불을 켜놓고 딱히 할 일도 없다. 가난한 산골에서 유일한 낙이라고는 배꼽사랑 밖에 없다. 집집마다 줄줄이 사탕처럼 자식들이 많은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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