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까시의 추억

방위의 설움

말까시 2014. 10. 8. 12:25

 


◇ 방위의 설움

 

까시는 방위다. 초치원 훈련소에서 삼주교육을 받고 예비군 대대에서 14개월 근무하고 전역했다. 보충역(방위)으로 근무를 했기 때문에 해제가 맞는 말이다. 도시락을 싸들고 자전거를 이용해 출퇴근했다. 빨간 날은 쉬었다. 군복무를 하는 것이 아니라 직장에 다니는 것처럼 분위기가 좋았다. 월급만 준다면 평생 직업으로 선택해도 무난했다. 하지만 방위는 직업군인이 될 수 없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곳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아!!! ‘좃도방위’ 시절이 그립다.

 

대전병무청에서 신체검사를 받았다. 바짓가랑이를 내리고 중요부분을 노출한 채 검사를 받기도 했다. 아직 군인이 아닌데도 얼차려도 받았고 욕도 먹었다. 살벌한 분위기에 누구하나 이의를 제기 하는 사람은 없었다. 엉덩이를 까고 치질 검사도 했다. 다른 곳은 이상이 없었는데 시력이 문제였다. 대나무 뿌리로 만든 지휘봉으로 시력검사용 숫자판을 가리켰지만 잘 보이지 않았다. 고도 근시였다. 지팡이도 보이지 않는다고 구라를 쳤더니만 머리를 때렸다. 정밀검사를 받아야 했다.

 

시골 친구들이 여섯 명이나 있다. 초등학교가 학업이 전부인 친구는 삼주 훈련을 받는 것으로 마쳤다. 싸움 잘하는 친구는 현역으로 입대하여 북풍한설 몰아치는 전방에서 팽이치고 있었다. 나머지 네놈은 멀쩡함에도 불구하고 방위로 판정 받아 향토방위에 전념하고 있었다. 나보다 먼저 들어간 그들이 여간 부러운 것이 아니었다. 현역으로 가면 사회진출도 늦어지고 이것저것 따져 봐도 좋을 것이 없었다. 방위로 판정받기를 간절히 빌고 또 빌었다. 판정결과를 보는 순간 만세삼창을 외쳤다. 나도 향토방위를 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았던 것이다.

 

나보다 먼저 들어간 놈들은 고참이 다되었다. 그들을 보면 충성 하고 인사를 해야 했다. 같이 훈련을 받아야 할 생각을 하니 아찔했다. 첫날, 친구의 도움으로 위병소를 무사히 통과 했다. 대대장에게 전입신고를 하고 대기 하고 있었다. 불안했다. 마침 선배가 행정병으로 추천해주어 친구 놈들과 마주치는 불상사는 면했다.

 

작전과에 배치되었다. 처음엔 신문지에 글씨 쓰는 연습을 했다. 괘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글씨를 잘 쓰는 병사가 필요했다. 손재주가 있는 나는 차트글씨를 금방 배웠다. 빠르게 실력이 느는 것에 칭찬도 받았다. 일처리 또한 매끄럽게 하여 종종 특별 휴가도 받았다. 그때 그곳에서 타자도 배웠다. 독수리 타법이었지만 꽤나 빠르게 공문서도 만들었다. 등사원지를 철필로 긁어 다량의 문서도 만들어냈다.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아 귀염둥이 칭호를 받기도 했다.

 

사회에 나와 군대이야기만 나오면 쥐 죽은 듯이 있어야 했다. 특히, 가시나들은 방위를 신랑감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방위’라 하면 피식!!!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들은 ‘좃도방위’라 놀리며 장애인 취급을 했다. 군복무시 재주꾼이라 칭찬을 받았는데 이렇게 홀대를 받고 보니 서럽고 슬펐다. 배꼽사랑에 문제가 있는지 지들이 아나, 확인도 안 해 보고 깔보는 가시나들이 미웠다. “까시는 ‘좃도방위’가 아니다. 단지 <눈깔방위>일뿐이다. 알겠느냐 이년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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