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간식 자줏빛 고구마
가을 햇볕이 따갑게 내리쬐고 있다. 빠삭빠삭 벼 익어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텃밭에 배추, 무가 무성하게 자라 땅이 보이지 않는다. 감나무 잎이 떨어진 사이로 매달린 홍시는 새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수수는 고개를 숙여 겸손을 떨고, 납작 엎드려 자라고 있는 고구마는 땅을 갈라 수확을 기다리고 있다. 울타리 호박잎은 시들어 볼품이 없고, 벽을 타고 오른 오이넝쿨은 노랗게 변했다. 경운기 소리가 요란하다. 본격적인 가을걷이가 시작된 것이다.
고구마는 감자와 함께 어린 시절 간식용으로 각광을 받았다. 공부에 취미가 없는 아이들은 산과 들로 나가 노는 것이 하루의 일과였다. 점방이 있을 리가 없다. 있어도 돈이 없어 군것질을 할 수가 없다. 놀다보면 배가 고프다. 무엇인가 먹어야 놀 수 있는 것이다. 여름에는 산딸기를 가을에는 밤과 감을 겨울엔 고구마로 허기를 면했다. 서리도 해서 허기를 면하기도 했다. 이맘때쯤이면 고구마를 수확하여 윗목에 퉁가리를 만들어 보관한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나면 나무들도 잎을 버리고 겨울채비를 한다. 들판에 자라고 있던 잡초도 수분을 잃고 시들어 주저앉는다. 먹을 것을 찾으려 해도 없다. 배가 고프다. 호주머니에서 고구마를 꺼내 한입 물어 깨물어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다. 물도 많이 들어 있어 갈증도 해소된다. 에너지가 보충된 아이들은 나무에 올라가 타잔 놀이도 했다. 장작개비를 주어모아 고구마를 구어 먹기도 했다. 생고구마보다 백배는 맛있다. 이듬해 봄까지 아이들의 배를 채워 주었던 고구마는 웰빙식품으로 탈바꿈 되어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
고구마를 키우기 위해서는 땅을 파고 씨알 굵은 고구마를 묻어 놓는다. 적당한 수분과 온도가 유지되면 싹을 튀어 넝쿨을 만든다. 어느 정도 자라면 넝쿨을 잘라 일정한 간격을 두고 꽂기만 하면 된다. 반드시 비오는 날 해야 물을 주는 수고를 덜 할 수 있다. 고구마는 농약을 살포하지 않아도 잘 자란다. 고구마 순은 나물로도 손색이 없다. 기름을 두르고 뽁아 반찬으로 내놓으면 순식간에 동이 난다. 무기물과 섬유질이 많아 변비로 고생하는 분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음식이다.
고구마를 수확하다보면 크기가 작은 것들이 있다. 삶아서 말리면 달콤하고 꼬들꼬들 하여 주념부리 하기 좋다. 얇게 썰어 붙여낸 고구마전은 추석날 차례 상에도 올랐다. 채 썰어 기름에 튀기면 과자로 탄생하여 젊은 층들에게 인기 짱이다. 영화관에 가면 감자나 고구마튀김을 볼 수 있다. 패스트 푸드점에도 빠지지 않는 단골 음식이다. 연한 고구마 순을 삶아 말려 놓으면 고사리와 함께 겨울 내내 나물로 즐겨 먹을 수 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군고구마가 나타난다. 워낙 먹거리가 많다보니 예년만 못하다. 호호 불어 가며 먹었던 군고구마도 추억의 음식으로 변했다. 도시에서 만들어 먹기가 쉽지가 않다. 시골에도 마찬가지다. 보일러가 보급되면서 아궁이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도시와 농촌의 사는 방식이 별반 다르지 않다보니 추억의 음식들이 사라져 아쉽다. 엄마는 저녁밥을 하고 나서 아궁이에 남아 있는 불구덩이 속에 고구마를 묻어 놓았다. 이젠 다시 엄마가 구워주는 고구마를 먹을 수가 없다. 양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나의 배를 채워 주었던 고구마의 추억이 깊어가는 가을날 무던히도 생각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