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까시의 추억

밥심으로 산다고 했는데

말까시 2014. 10. 21. 11:21

 

 

◇ ‘밥심으로 산다.’고 했는데 

 

가을비가 추적추적 청승맞게 내린다. 노랗고 빨간단풍이 더욱더 선명하다. 기온이 내려 간 것 같지는 않지만 느낌은 차갑다. 우산을 받쳐 들고 집을 나선 출근길, 시선은 땅을 볼 수밖에 없다. 어지럽게 떨어진 낙엽은 찢어지고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바퀴달린 것들에 짓이겨진 물먹은 낙엽은 쏟아지는 빛을 밀어낸다. 빠르게 달려가는 차들은 물보라를 만들어 날렸다. 깊어가는 가을, 이비가 그치면 대롱대롱 매달린 홍시가 남아날까. 김이 모락모락 나는 어묵국물이 생각나는 비요일이다.  

 

지금 황금들녘에는 벼 베기가 한창이다. 콤바인이 지나갈 때마다 차곡차곡 쌓이는 나락들이 가마니 속을 채우고 논바닥에 떨어져 나뒹군다. 날카로운 칼날에 잘린 볏짚은 가지런히 쓰러져 또 다른 것으로 탈바꿈하기를 기다린다. 볏짚은 하얀 비닐에 쌓여 숙성과정을 거치면 훌륭한 소먹이가 된다. 트랙터에 실린 나락가마니는 정미소 업자에게 바로 넘어간다. 멀리서 지켜보던 농부는 그날의 수확이 얼마나 되나 주판을 튕기는 것으로 끝난다.  

 

소싯적 고래실에는 둠벙이 있어 비가 오지 않아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 가을 벼 베기가 용이 하도록 수로를 만들어 물을 빼고 바닥을 말린다. 벼 베기가 끝나면 미꾸라지를 잡았다. 둠벙에서 흐르는 물 따라 이어진 수로를 파 일구면 살이 통통하게 오른 미꾸라지가 드러난다. 뱃가죽이 누렇다. 주전자에 담고 담아 가져오면 훌륭한 추어탕으로 변신한다. 단백질 공급원의 일등공신이다. 

 

탈곡을 위해서 밟아 돌리는 기계를 이용했다. 여러 명이 어울려 힘차게 밟으면 원통이 돌아가면서 돌출된 철사가 낱알을 털어 낸다. 발을 번갈아 밟지 않으면 지속하기 어렵다.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면 잠시 멈추고 막걸리를 들이키며 숨고르기를 해야 한다. 탈곡이 끝나면 돗자리를 좌우로 흔들어 이물질을 제거 했다. 이후 모터가 달린 탈곡기가 나와 수월해졌지만 가을걷이를 위한 손놀림은 찬 바람날 때까지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볏짚은 담벼락 옆에 쌓아 땔감으로 이용하고 여물을 만들어 쇠죽을 끓였다. 둑집에 가득 쌓아놓은 나락은 조금씩 퍼 다가 방아를 찧어 쌀밥을 만들었다. 여유가 있는 집은 읍내에 내다 팔아 돈을 만들었다. 추석에는 햅쌀을 빻아 송편을 빚었고 팥고물과 쌀가루가 층층이 쌓인 시루떡을 만들어 먹었다.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햅쌀밥은 신 김치 하나만으로도 달달하니 맛이 좋았다.  

 

쌀이 남아돈다고 한다. 소싯적 가을걷이가 끝나면 수매가 이루어졌다. 쌀이 귀한 시절 정부에서는 혼식을 부르짖었고 쌀은 집집마다 강제 할당량을 정해 공출해갔다. 통일벼가 나오면서부터 쌀이 남아돌자 수매를 서로 하려 했다. 이젠 반대로 수매량을 제한했다. 남아도는 쌀 소비를 위해 쌀 막걸리도 허용했다. 짧은 시간에 벼를 심어 수확하기까지의 과정이 많이도 변했다.

 

요즘아이들은 밀가루 음식에 길들여져 밥을 별로 좋아 하지 않는다. 시골에서 올라온 쌀가마니에 벌레가 생겨 다시 보내는 악순환도 벌어지곤 한다. ‘밥심으로 산다.’고 했는데, 먹을 것이 풍부해짐에 따라 쌀 소비가 급격하게 줄어 골머리를 앓고 있다. ‘농사는 천하지대본’이라 했다. 산업화에 밀려 점점 줄어드는 농경지를 볼 때면 근본이 무너지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내년에는 텃밭을 두 배로 넓혀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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