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얘기

하수구 막힘 주범은?

말까시 2014. 2. 20. 16:01

 

 

◇ 하수구 막힘 주범은?

 

입춘과 동시에 우수가 지나 개구리가 나온다는 경칩이 다가오고 있다. 매섭게만 느껴졌던 칼바람은 누그러트려지고 훈풍이 도시를 감싸 않았다. 개골창에 흐르는 물소리가 제법 크다. 살 오른 쥐들은 하수구 철망에 걸려 낑낑댄다. 담벼락위에 길고양이도 따스한 햇살에 낮잠을 즐긴다. 집안에만 있던 애완견이 밖으로 나왔고 덩달아 따라 나온 아이들의 장난에 잉어 때가 다라난다. 연두색 봄기운이 완연해지면서 반짝이는 강물은 여울을 만들어 눈부시다.

 

세면대가 막히어 배수가 원활하지 않다. 머리카락이 쌓이고 쌓여 물길을 막은 것이다. 옷걸이로 만든 꽂을대를 찔러 뽑아내면 머리카락을 쉽게 제거 할 수 있다. 제법 많은 머리카락이 올라왔다. 물을 틀어 내려 보았다. 시원스럽게 빠져나가야 할 물은 그대로 차올랐다. 이상했다. 세면대 아래 U자부분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세면대를 감싸고 있는 케이스는 사기로 되어 있었다. 양쪽을 고정하고 있는 나사를 풀다가 그만 깨트리고 말았다. 낭패다. 세면대에서 하수구로 연결된 파이프를 분리해보려 했지만 움직이지 않는다. 강한 힘을 주어 비트는 순간 세면대와 접촉된 부분이 우지직 부러졌다. U자부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드러난 하수구에 꽂을대를 깊숙이 밀어 넣어 잡아 당겼다. 머리카락이 오물과 뒤범벅이 되어 한 움큼 올라왔다. 소름이 돋았다. 토할 것만 같았다. 장시간 쌓인 머리카락이 기름성분과 뭉쳐져 하수구를 막았던 것이다.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아내도 오라 했다. 하수구에서 꺼낸 오물을 보여주었다. 아이들은 기겁을 하고 다라난다. 비위가 약한 아내도 욱하고는 입을 가린다. “가급적 세면대에서 머리를 감는 것은 삼가고 샤워부스에서 감을 것”을 당부했다. “절대 세면대에서 감지 않았다.”고 오리발을 내미는 아이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머리카락을 조사하면 다 나온다고 협박했지만 인정하지 않는다. 아내 역시 극구 부인한다. 우리 집 아이들은 잘못에 대하여 절대 인정하지 않는 습성이 있다. 물증이 없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배수불량 세면대는 나의 수고로 경쾌한 소리를 내며 시원스럽게 내려갔다.

 

우리가 사는 보금자리에는 하수구가 여러 개 있다. 싱크대를 비롯하여 세면대, 화장실 바닥 그리고 베란다에도 있다. 장시간 사용하다보면 막힐 수밖에 없다. 오랫동안 관리하지 않으면 손수 뚫기가 어렵다. 수리 점의 도움을 받아야한다. 출장비를 비롯하여 재료비, 노임을 합한 금액은 상당하다. 틈틈이 청소하면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돈을 낭비하게 되는 것이다. 여자들은 남자의 탓이라 한다. 세면대나 화장실 바닥의 하수구가 막히는 것은 여자들의 긴 머리가 주를 이룬다. 길이가 짧은 남자들의 머리는 하수구를 거쳐 밖으로 나간다. 틈틈이 꽂을 대로 제거를 해주어야 한다. 어렵지 않은 일인데도 남자의 일이라 꿈쩍을 않는 우리 집 여인들은 상황에 따라 수시로 변한다. 두 여인 중에 딸내미는 머리가 아주 길다. 아들놈도 제법 긴 편이다. 한편, 아내는 머리감는 횟수가 잦다. 범인은 두 여인이다. CCTV가 없어 물증을 잡지 못했지만 확실하다.

 

“수리 점에 맡겨야 할 것을 손수 했으니 보상이 있어야 하지 않냐.”고 항변했지만 “우리가족 공동구역이며 가장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의무라 절대 보상할 수 없다.”고 한다. 이에 동조하는 아이들은 아내 편을 들면서 “그런 것 주장하지 말고 술을 줄여 가정경제에 보태라” 한다. 매번 아내가 주동이 되고 아이들이 동조하여 왕따를 시키는 혼성삼인의 주범들에게 일침을 가하기 위해서는 복수의 칼날을 갈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