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곰장어의 참맛을 알았다.
세상이 온통 뿌옇다. 미세먼지가 도심을 덮어버린 것이다. 바람이라도 불면 금방 날아 갈 것인데 나무를 보니 미동도 하지 않는다. 햇볕도 흐리멍덩하다. 나쁜 먼지는 어디서 날아 왔을까. 수없이 다니는 차량의 매연과 공사장에서 부양한 먼지도 한몫하고 있지만 중국에서 날아온 먼지가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한다. 방진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서는 폐 속으로 들어가는 먼지를 막을 수가 없다. 오늘 같은 날은 일찍 귀가 하여 깨끗이 씻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다.
벼르고 벼르던 ‘곰장어에 한 잔의 술’, 어제 소원을 풀었다. 친구에게 카톡이 왔다. 곰장어 구이를 아주 잘하는 곳을 알고 있다며 오라했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할 무렵 보따리를 정리하고 사무실을 나왔다. 전철을 타고 목적지에 도착해보니 친구들이 와 있었다. 큰 사거리라고 하지만 변방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식당 안에는 너무 조용했다. 손님이 없다는 것은 맛집이 아닐 확률이 높다. 좀 실망은 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잠시 후 실망은 기우에 불과 했다.
화덕에는 야자수탄이 불꽃을 내며 열을 내뿜고 있었다. 석쇠위에 장어가 올려졌다. 뜨거운 열기에 장어는 비비꼬았다. 표면을 보니 후추를 뿌린 듯 검은 것이 묻어 있었다. 장어가 익어가면서 구수한 냄새는 구미를 바짝 당겼다. 열이 가해지면서 노릇노릇 익은 장어는 입 안 가득 침을 고이게 했다. 가위로 토막을 내어 가는 소금을 찍어 맛을 보았다. ‘아! 장어의 참 맛이 이런 것이구나.’ 친구들은 탄성을 자아냈다.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함은 입안 구석구석을 파고들었다. 반찬으로 나온 부추김치는 장어의 맛을 한층 더해주었다. 소주와 함께 먹는 장어는 익기가 무섭게 사라졌다.
메뉴판을 보니 막창도 있었다. 소 막창을 맛보기로 하고 주문을 했다. 석쇠를 치우고 불판을 올려놓았다. 손바닥만 막창 네 조각이 나왔다. 뜨거운 불판에 오르는 순간 오징어처럼 오그라들었다. 지글 지글 표면에 기름이 튀어나왔다. 가위로 썰어놓고 보니 양이 상당했다. 콩가루를 묻히고 젓갈소스에 찍어 맛을 보았다. 장어보다 더 고소했다. 쫄깃하게 씹히는 식감은 입안을 한동안 행복하게 했다. 안주가 없어지면 없어질수록 이슬양은 점점 늘어만 갔다. 소맥을 즐겨먹다 보니 갈색병과 녹색병이 번갈아 쌓여갔다.
술이 거하게 취하도록 손님은 우리밖에 없었다. 이렇게 맛깔스런 음식을 만들어주는 식당에 손님이 찾아오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정성껏 고기를 구워준 사장님께 물어보았다. 구정이 다가오면서 손님이 확실하게 줄었다고 한다. 작년연말에 많이 마시다보니 일 월 한 달은 숨고르기를 하는 영양도 있다고 한다. 담배 피는 사람도 없고 손님도 없어 실내공기가 좋았다. 절간처럼 조용해서 이야기꽃을 피우며 술 마시기에는 제격이었다.
맛있고 즐겁게 마신 술은 이튿날 구라파전쟁을 일으키지 않는다. 머리도 아프지 않다. 대 만족을 하고 나온 친구들은 가끔 모여 술잔을 기울이자고 했다. 밤이 깊었다. 대중교통이 끊어질 시간이 다가왔다. 택시를 탔다. 조용히 가려 했는데 자꾸만 말을 시켰다. 돌아보니 노인이었다. 나이가 팔십이 넘었다고 한다. 노익장을 과시하는 기사님은 일을 하는 것이 너무나 즐겁다면서 군인연금을 받고 택시로 한 달에 150정도 번다고 했다. 삶의 여유가 있어보였다. 선하게 생긴 기사님은 집에 도착할 때까지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었다. 가정사 안 좋은 일로 우울했는데, 장어와 기사님의 희망적인 말에 모처럼 기분 좋은 하루였다.
☞불타는 꼼장어 막창(광진구 긴고랑로88 ☎-070-7167-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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