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말 저녁을 흐뭇하게 했던 멸치김치 찌개
첫눈이 오고 한참을 지나 눈이 내렸다. 밤새 내린 눈은 삭막한 도시를 하얀색으로 수놓았다. 앙상한 가지를 감싸 않았고 솔잎에는 탐스런 눈꽃이 피었다. 눈은 불편함을 안겨다 주지만 마음을 들뜨게 하는 마력이 있다. 겨울철에 없어서는 안 될 상징적인 것으로 그만큼 눈에 대한 추억이 많다는 것이다. 나무를 감싸고 있던 눈은 녹아 흘러 줄기를 적시고 길을 흥건하게 했다. 차가 지날 때마다 물방울이 튄다. 어둠이 와 기온이 내려가면 빙판길로 둔갑하여 꽈당 하지 않을까. 퇴근길이 조심스러워진다.
주말 아내는 처제 간병을 위하여 병원에 가고 없다. 일요일 저녁 늦게 온다면서 아이들과 밥 챙겨 먹고 어디 가지 말고 집안일에 관심을 갖으라 했다. 동서가 간이식 수술을 하는 바람에 간을 기증한 처제와 동서누이동생이 환자가 되어 처제들을 다 동원하고도 모자라 간병인을 구해야 했다. 아내가 없는 집안은 썰렁했다. 아이들은 자기 방에 들어가 꼼짝을 안한다. 집에서 할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아침부터 TV리모컨을 만지작거릴 뿐 달리 할 것이 없었다. 답답한 시간의 연속이었다.
부엌에서 떨그럭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들은 각자 먹을 것을 챙겨 먹는다. 일직이 스스로 차려먹는 것이 몸에 배어 아내를 귀찮게 하지 않는다. 적당히 먹을 것만 준비해놓으면 알아서 해결한다. 무엇을 드시나 살며시 나가보니 아들놈이 라면을 끓여 먹고 있었다. 먹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불량식품이라고 강조했던 나였기에 입맛만 다실 수밖에 없었다. 설거지를 해야 한다는 주문을 하고 귤 두 개와 감 하나를 들고 안방으로 들어왔다. 간단히 허기를 면하고 TV시청에 집중했다. 재미가 없다.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전원을 꺼버렸다. 자전거를 탈까 하고 생각도 했지만 절차가 복잡하여 접었다. 집안은 고요함이 적막감으로 변해 절간 같았다. 스르르 잠이 온다.
거실에서 인기척이 들린다. 시간은 정오가 넘었다. 부엌 식탁에는 딸내미가 무엇인가 잡수시고 있었다. 밥맛도 없고 해서 과자를 먹는 다고 했다. 딸내미는 먹을 것이 없다고 투덜거린다. 챙겨 먹는 것도 귀찮은 듯 불량식품에 손길이 간다. 건강을 위하여 줄이라 했더니만 일없다한다. 일일이 계산하면서 먹다가는 그 자체가 스트레스라 하면서 간섭하지 말라한다. 과자로서는 양이 안차는 듯 컵라면을 챙겨 든다. 인스턴트에 익숙한 아이들이 밥하고 빨래하고 음식을 만들어 건강식을 만들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건강식에 대한 고급정보를 주려 했지만 포기하고 말았다. 시간은 정오를 넘어 빠르게 내 달리고 있었다. 나도 무엇인가 먹어야 했다. 과일로 하루를 때우려 했더니만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 냉장고를 뒤져보았다. 떡국 떡이 있다. 달래도 있다. 시골에 갔을 때 따온 홍고추가 꽁꽁 얼어 구석에 처박혀 있다. 처남이 농사지어 보내온 표고버섯은 탐스럽게 성애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마늘은 언제 갈아 놓았는지 비닐에 담겨져 냉동고 상단에 누워 잠자고 있었다. 언제 넣어 놓았는지 모르는 시루떡도 보인다.
두툼한 멸치 다섯 개를 꺼내 내장을 발라냈다. 냄비에 물을 붓고 멸치와 다시마를 넣고 팔팔 끓였다. 장모표 김장김치를 송송 썰어 표고버섯과 함께 넣었다. 달래도 넣었다. 양념으로는 생강과 마늘을 다져 넣고 신맛을 내기 위해 사과식초 몇 방울을 떨어 뜨렷다. 집안에는 구수한 냄새가 진동을 한다. 냄새에 이끌려 나온 아이들은 식탁에 앉아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불량식품에 지겨웠는지 빨리 달라고 재촉한다. 다른 반찬필요 없이 멸치김치찌게와 하얀 쌀밥으로 상차림을 했다. “오! 이 맛이야. 아빠표 김치찌개는 언제 먹어봐도 변함이 없어. 아빠! 최고” 라 하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그날 밤, 아내 없이도 흐뭇하게 잠자리에 들어 꿈속의 나래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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