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까시의 추억

불장난으로 날릴 번한 초가집

말까시 2008. 2. 22. 09:05
 

◇ 불장난으로 날릴 번한 초가집


요즈음 머피의 법칙이라도 증명하려는 듯 숭례문이 불타더니만 어제는 정부종합청사에 불이 났다.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지만 한밤중에 일어난 불은 광화문의 거리를 온통 불자동차가 점령하여 큰 소동을 일으켰다. 서울의 중심가에서 연거푸 발생하는 화재로 대다수의 국민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새 정부가 탄생하는 것을 시샘이라도 하려는 듯 심술을 부리고 있는 화재, 인류의 발생과 함께 우리 곁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것임에는 틀림없지만 관리를 잘못하면 엄청난 피해를 가져다준다. 뿐만 아니라 생명을 앗아가는 무서운 존재이기도 하다. 금방 진화되었기 망정이지 불길이 번져 걷잡을 수 없이 번져버렸다면 큰 혼란이 일어날 뻔했다.    


코 흘릴 적 추운 겨울이 되면 썰매타고 연 날리며 노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만 뭐니 뭐니 해도 불장난이 가장 재미있다. 불장난은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는 한겨울에 시작하여 정월대보름날에 절정을 이루다가 점점 시들어 봄이 되면 사라진다. 얼음을 지치다 지치면 논두렁에 무성히 자라있는 잡초에 불을 붙이면 훨훨 잘도 번져간다.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 불꽃은 얼굴을 벌겋게 달아오르게 하며 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잡초가 타는 열기는 후끈하여 칼바람이 불어와도 전혀 걱정이 없다.


그 당시 썰매를 타다 보면 물에 빠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운동화도 양말도 물에 젖어 빨리 말리지 않으면 발이 시려 견딜 수가 없다. 모닥불에 양말을 말리다 보면 재질이 나일론이라 작은 불씨에도 구멍이 나곤했다. 불에 태워져 구멍 이 난 양말은 발가락이 삐져나와 신을 수가 없다. 혹여나 엄마가 알기라도 하면 혼쭐이 난다. 지금은 구멍이 나 헤지면 바로 버리지만 그 당시만 해도 꿰매서 오랫동안 신고 다녔다. 어려운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이다.


우리가 초등학교 시절 만에도 시골에는 초가집이 많았다. 가을에 추수가 끝나면 빛바랜 지붕을 걷어내고 볏짚으로 이엉을 엮어 새 단장을 했다. 초가집은 따뜻했다. 볏짚은 차가운 공기가 들어오는 것을 허락지 않는다, 방안의 따뜻한 공기를 가두어 두는 데도 탁월하다. 그렇게 아름답던 초가집도 새마을 사업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슬레이트가 보급되면서 하나 둘씩 사라졌다. 매년 지붕을 새로 엮는 수고 덜했지만 단열이 안 되어 겨울에는 추었으며 시골풍경을 상막하게 했다.


지금은 민속촌이나 가야 볼 수 있는 포근하고 아늑한 초가집을 한순간의 실수로 홀라당 태워버릴 뻔했다. 성냥을 가지고 불장난 한 것이 화근이었다. 마루에 서서 성냥을 손으로 튀겨 불을 붙여 날리면 그 모습이 불꽃놀이처럼 참 재미가 있다. 그런데 그 중 하나가 너무 높이 올라 처마 밑의 거미줄에 걸리고 말았다. 거미줄에 걸린 성냥은 바로 위에 늘어져 있는 짚에 불을 붙게 했다. 빨리 불을 끄지 않으면 지붕으로 번져 큰불이 날것이 뻔했다. 손을 높이 쳐들어 꺼보려고 했지만 처마는 높았다. 물을 길어다 뿌리려 했지만 우물가는 너무 멀었다. 이일을 어쩌나 얼굴은 사색이 되어 굳어버렸다. 순간 눈앞이 아찔했다. 정신을 가다듬고 주변을 살폈다. 빗자루가 보였다. 바로 저것이다. 빗자루를 들어 힘차게 내리쳤다. 그렇게 하여 불은 꺼졌지만 검게 타버린 처마가 문제였다. 엄마가 알면 난 죽는다. 엄마가 오기 전에 모든 흔적을 없애야 했다. 타다 남은 짚을 몽땅 뽑아버렸다. 그을린 자국도 빗자루로 내리쳐 제거하였다. 잠시 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평상을 되찾을 수가 있었다. 그 때 그 일은 지금까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며, 오늘에서야 밝히는 일급비밀이다.


불, 불은 소중이 다루어야할 아주 무서운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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