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까시의 추억

어설픈 사과 서리

말까시 2009. 7. 28. 16:51

 

 

  

◇어설픈 사과 서리

 

여름밤은 길고도 길다. 깊은 잠에 빠져 자다가 아침인가 싶어 눈을 떠보면 자정도 되지 않았다. 다시 잠을 청해보지만 뒤척이는 횟수만 늘어날 뿐 좀처럼 잠을 이룰 수가 없다. 벌떡 일어나 먹을 것이 없나 냉장고 문을 열고 뒤지기 시작한다. 덜그럭 거리는 소리에 잠을 설친다고 애들은 투정을 부린다. 잠결에 물이나 한 컵 먹고자 따르다 보니 한데 흘리는 것이 더 많다. 아무도 나를 반기지 않는 여름밤은 지루하고 길게만 느껴진다. 어린 시절에 과일 서리를 하면서 긴 밤을 보냈던 생각이 새록새록 살아난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서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사랑방 주위에 검은 그림자가 보였다. 이윽고 뻐꾸기 소리가 들렸다. 나를 부르는 소리였다. 준비하고 있었던 난 살며시 문을 열고 나섰다. 비는 계속하여 내리고 있었다. 네 명의 전사들은 비를 맞으며 마을 어귀를 지나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가로등이 없는 시골길은 암흑이었다. 평소 자주 다니는 길이었기에 빠르게 걸을 수 있었다. 빗방울은 윗옷을 파고 들어가 속옷까지 다 젖게 만들었다. 대수롭지 않았다.

 

목표물이 저 앞에 있다는 것이 직감으로 느껴졌다. 낮에 염탐을 해놓았기 때문에 바로 접근하여 따오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숨을 죽이며 몸을 낮추어 울타리로 접근했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울타리는 견고했다. 하지만 아무리 견고해도 날센도리 친구들에게는 무용지물이었다. 친구와 친구는 무등을 태워 울타리를 잡고 넘었다. 쿵 소리가 나면서 갑자기 개가 짖어대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도망쳐라”는 말과 함께 우린 울타리를 넘어 줄행랑을 쳤다. 낮에는 없었던 개가 밤에 불시에 나타난 것이다.

 

보이지도 않는 길을 감각으로 뛰었다. 비가 와서 미끄러지기도 했다. 과수원에서 멀어졌나 싶어 뒤를 보니 후레쉬 불빛은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아무리 어른일지라도 우리들을 따라잡기는 역부족이다. 그런데 달아나는 길을 용케도 찾아 따라 오고 있었다. 묘한 일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밤길을 어떻게 알고 쫒아 오고 있는 것일까. 우린 산으로 도망쳤다. 숲속에 숨어 살피니 더 이상 따라오지 않았다. 안도의 숨을 내쉬며 천천히 걸어서 친구 집에 도착했다.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도감에 우린 사랑방에 모여 야참을 먹었다. 서리에 실패한 원인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이 밤중에 누구란 말인가. 우린 긴장을 하기 시작했다. 젖어 있는 신발이 뜨럭에 있는데 큰일이었다. 어떻게 찾아 왔을까.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우린 침대 밑으로 숨었다. 친구 어머니는 둘러대기 시작했다. 우리 집은 자식들이 많아 신발이 많다고 했다. 과수원 주인은 축구화 발자국을 따라 왔다고 했다. 축구화 주인이 누구냐고 따지고 들었다. 친구 형이 나갔다. 잠결에 나간 형은 아무것도 모른 채 오늘 읍에 축구화를 신고 갔다 왔다고 했다. 과수원 주인은 의심을 하면서도 물증이 없어 고개를 갸웃하면서 돌아갔다.

 

서리를 하러 갈 때 형의 축구화를 친구가 신고 갔었다. 우리가 산으로 해서 집에 왔지만 낮에 친구 형이 박아 놓은 축구화 발자국은 과수원 주인의 길안내를 톡톡히 한 것이다. 아마도 그날 잡혔으면 그동안 털린 사과 값을 다 치를 번했다. 그 당시엔 각종 서리가 유행했었다. 서리로 인하여 말썽도 많았고 탈도 많았었다. 지금은 통용이 안 되지만 어느 정도 용납되는 것도 있었다. 서리에 관한 추억, 시골에서 자란 친구들은 누구나 한번쯤 아픈 추억이 있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