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까시의 추억

왜 아이들은 무덤에 가야 했나.

말까시 2010. 9. 8. 16:37

 

 

 

◑ 왜 아이들은 무덤에 가야 했나.

 

둥근달이 떴다. 바람 한 점 없는 어두운 밤거리는 뜨겁지 않았다. 약간 차가움이 소름을 돋게 했지만 이내 상큼함이 머리를 감쌌다. 보름달이 동산에 올랐을 때 한동안 조용했던 시골에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골목어귀마다 웅성이고 있는 사람들은 평소 보지 못한 모습이었다. 원색의 화려한 옷차림을 한 사람들도 있었다. 너덧 명씩 어울려 깔깔대고 있는 사이에 아이들도 있었다. 집집마다 불을 훤하게 밝히고 웃음꽃을 피우는 소리는 담을 넘어 이웃집 나뭇가지에 걸렸다. 시끌벅적하게 시작된 한가위의 밤은 즐거움으로 가득했다.

 

정자나무 아래에는 남자아이들이 즐겁게 놀고 있었다. 낮에 배불리 먹은 음식이 왕성하게 소화를 하면서 아이들에게 힘을 솟아나게 해주었다. 일직이 도시로 나가 수돗물을 먹고 뽀얀 얼굴을 한 아이는 연신 서울자랑을 늘어놓았다. 그 주위에 빙 둘러앉아 귀담아 듣고 있는 아이들은 신기한 듯 고개를 갸우뚱 했다. 달은 어느새 높이 솟아올라 휘영청 밝았다. 삼십여 가구가 모여 사는 산골마을은 달빛에 물들어가면서 넉넉하게 밤이 깊어가 가고 있었다.

 

아직도 남자아이들은 그대로 놀고 있었다. 밤공기가 차가웠는지 풀잎에 이슬이 맺혔다. 바위틈에 숨어 우는 귀뚜라미는 몹시 불안한 듯 울다 멈추곤 했다. 아슴푸레한 달빛아래 저 멀리서 한 무더기 그림자가 조심스럽게 다가오고 있었다. 아이들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제히 눈동자는 한곳으로 집중을 했다. 아무소리도 하지 않고 근접해오는 무리들은 여자아이들이었다. 이 어두운 밤에 왜 여기로 오는 것일까. 남자아이들은 의아 했다.

 

“도망가자” 누군가 외쳤다. 남과 여가 어두운 밤에 같이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시골에서는 크나큰 사건이었다. 어른들이 알면 보통일이 아니다. 누가 볼세라 남자아이들은 뒤 동산으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자 아이들도 계속하여 따라오고 있었다. 산등성이에는 무덤이 듬성듬성 보였다. 무섭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다. 아이들은 무덤 옆에 우거진 숲속에 몸을 감추었다. 풀벌레 소리는 사라지고 부엉이 우는 소리가 음습하게 들려왔다. 여자아이들은 용케도 방향을 잃지 않고 무덤 쪽으로 접근하여 왔다. 슬그머니 다가온 가시나들은 ‘환타’‘비스킷’을 들이밀며 같이 놀자고 했다.

 

무덤을 뒤로 하고 둘러앉은 까까머리 머슴아들과 단말머리 가시나들은 음료수의 싸한 맛과 과자의 달콤한 맛을 서로 나누어 먹으면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슬은 물이 되어 머리를 촉촉이 젖어들게 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지만 달빛의 기울기를 보아서는 자정이 넘은 듯 했다.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제잘 대는 아이들은 또 다른 세상을 발견하고 그 감동에 젖어 어쩔 줄 몰라 했다. 이일을 누가 알기라도 한다면 어쩌란 말인가. 불길한 생각을 하면서도 아이들은 헤어질 줄 몰랐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이별하여 2년이 흐르는 동안 길거리에서 만나도 아는 채 하지도 않고 눈길도 주지 않았었다. 정신연령이 머슴아들보다 빠른 가시나들은 이미 이성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반면 머슴아들은 아직도 철부지 애들에 불과했다. 그 날 이후 거리에서 만나도 서먹함이 없었다. 말도 걸고 웃음으로 인사를 하곤 했다. 사랑방에 모여 전축을 틀어놓고 춤도 추었다. 무덤에서 싹이 트기 시작한 이성에 대한 동경은 아이들의 가슴속에 깊숙이 자리박아 세월이 흐른 지금도 진한감동으로 다시 살아나곤 한다.

 

◑ 왜 아이들은 무덤에 가야 했나.(장문)

 

둥근달이 떴다. 바람 한 점 없는 어두운 밤거리는 뜨겁지 않았다. 약간의 차가움이 소름을 돋게 했지만 이내 상큼함이 머리를 감쌌다. 보름달이 동산에 올랐을 때 한동안 조용했던 시골에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골목어귀마다 웅성이고 있는 사람들은 평소 보지 못한 모습들이었다. 원색의 화려한 옷차림을 한 사람들도 있었다. 너덧 명씩 어울려 깔깔대고 있는 사이에 아이들도 끼어 있었다. 집집마다 불을 훤하게 밝히고 웃음꽃을 피우는 소리는 담을 넘어 이웃집 나무에 걸려 오랫동안 머물렀다. 시끌벅적하게 시작된 한가위의 밤은 골목 안에 즐거움을 가득 채우면서 시작되었다.

 

정자나무 아래에는 남자아이들이 즐겁게 놀고 있었다. 낮에 배불리 먹은 음식이 배탈이 낫는지 화장실을 안방 드나들듯 하는 친구도 있었다. 못 먹고 못사는 시절에 모처럼 기름진 음식을 먹었으니 배탈이 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먹은 음식이 왕성하게 소화가 되는지 방귀를 힘껏 뀌는 아이들도 있었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아이들은 무엇이 즐거운지 간간이 폭소를 터트렸다. 아이들 중 일직이 도시로 나가 수돗물을 먹고 뽀얀 얼굴을 한 아이는 연신 서울자랑을 늘어놓았다.

 

서울에서 온 친구는 신발부터해서 입고 있는 옷차림이 시골아이들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시골아이들은 하나같이 빡빡머리를 자랑인양 들이밀고 서울친구 주위에 빙 둘러앉아 귀를 쫑긋하고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아이들은 신기한 듯 고개를 갸우뚱 하기도 했다. 서울을 가보지 못한 시골아이들은 서울친구가 하는 이야기에 대하여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가 없다. 고개를 끄덕이며 무조건 믿을 수밖에 없었다.

 

우물물을 먹고 사는 시골과는 달리 서울은 수도꼭지를 틀기만 하면 저절로 물이 나오고 한 달만 먹어도 얼굴이 하야진다고 했다. 동네에 하나 밖에 없는 텔레비전이 서울에는 집집마다 있고 광고방송이 나오는 시간에 재빨리 필름을 감아 영화처럼 다시 보여준다고 했다. 기차도 신호등이 있어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길가에는 차들이 꼬리를 몰고 다닌다고 했다. 버스도 다니지 않는 산골에 가끔 가끔 하늘에서 쏜살 같이 날아가는 전투기를 보는 것이 문명의 전부인 시골아이들에게는 상상이 가지 않았다. “자식 사기치고 있네.” “거짓말 하지마 인마” 여기저기 욕이 터져 나왔다. “촌놈들이 뭘 아나”하면서 서울친구는 시골친구들을 무시해버렸다. 즐겨 웃는 사이 달은 어느새 높이 솟아올라 휘영청 밝았다. 삼십여 가구가 모여 사는 산골마을은 달빛에 물들어가면서 넉넉하게 밤이 깊어가 가고 있었다.

 

아직도 남자아이들은 정자나무 아래 그대로 놀고 있었다. 밤공기가 차가웠는지 풀잎에 이슬이 맺혔다. 바위틈에 숨어 우는 귀뚜라미는 몹시 불안한 듯 울다 멈추곤 했다. 지나가는 어른들은 밤이 깊었으니 빨리 들어가 자라고 했다.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 사이 아슴푸레한 달빛아래 저 멀리서 한 무더기 그림자가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이들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제히 눈동자는 한곳으로 집중을 했다. 숨을 죽이고 살펴보니 어른은 아니었다. 아무소리도 내지 않고 접근해 오는 무리들은 여자아이들이었다. “이 어두운 밤에 가시나들이 겁도 없나” 왜 이쪽으로 오는 것일까. 남자아이들은 이해 할 수가 없었다.

 

“도망가자” 누군가 외쳤다. 남과 여가 어두운 밤에 같이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시골에서는 크나큰 사건이었다. 어른들이 알면 보통일이 아니다. 누가 볼세라 머슴아들은 마을을 뒤로하고 뒷동산으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가다가 멈추고 뒤돌아보면 가시나 들도 계속하여 따라오고 있었다. 산등성이에는 무덤이 듬성듬성 보였다. 무섭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다. 머슴아들은 무덤 옆에 우거진 숲속에 몸을 감추었다. 풀벌레 소리는 사라지고 부엉이 우는 소리가 음습하게 들려왔다. 가시나 들은 용케도 방향을 잃지 않고 무덤 쪽으로 접근하여 왔다. 가슴이 두근두근 망치질을 했다. 그때 서울친구는 앞으로 나서며 “우리가 죄졌냐.”고 하면서 다들 이리 나오라고 했다. 가시나들은 슬그머니 다가오면서 ‘환타’와 ‘비스킷’을 들이밀며 같이 놀자고 했다.

 

무덤을 뒤로 하고 둘러앉은 까까머리 머슴아들과 단말머리 가시나들은 음료수의 싸한 맛과 과자의 달콤한 맛을 서로 나누어 먹으면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국민(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한 번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남녀칠세부동석이란 말을 굳게 믿고 사는 시골에서 여자와 말을 거는 자체가 터부시 되었던 시절이었던 것이다. 말문이 터지기 시작하자 서울친구는 주도적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갔다. 너무 큰소리로 웃으면 누가 들을지 모르니 가급적 입을 손으로 막고 웃으라고 했다. 달빛아래 모여 있는 아이들은 옆에 있는 무덤에서 귀신이 나올지도 모른다고 불안에 하면서도 좀처럼 자리를 뜰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슬은 물이 되어 머리를 촉촉이 젖어들게 했다. 장시간 풀숲에 털 푸 덕 주저앉아 있어서인지 궁둥이에는 차가움이 밀려들어왔다. 뒤로 손을 대고 문질러보니 젖어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머슴아들과의 가시나 들은 이야기 속에 푹 빠져 한 덩어리가 되었다. 이상야릇한 느낌도 온다면서 점점 머리를 맞대고 서로의 마음을 읽으려고 열을 올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지만 달빛의 기울기를 보아서는 자정이 넘은 듯 했다.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제잘 대는 아이들은 또 다른 세상을 발견하고 그 감동에 젖어 어쩔 줄 몰라 했다. 이일을 누가 알기라도 한다면 어쩌란 말인가. 불길한 생각을 하면서도 아이들의 이야기는 그칠 줄 모르고 계속되었다.

 

다음날 온 동네에 소문이 쫙 퍼졌다. 어찌 알았는지 모르지만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그것도 무덤 옆에서 밤새도록 놀았다는 대 사건이 마을 어른들의 귀에 들어갔던 것이다. 어떻게 알았을까. 낮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이 거짓이 아닌 듯 했다. 동네 형들도 아이들을 볼 때면 놀리곤 했다. 그럴수록 그런 사실이 없다고 잡아 땠지만 허사였다. 그날 무덤 옆에서 놀던 아이들은 한참동안을 고개를 들지 못하고 지내야만 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이별하여 2년이 흐르는 동안 길거리에서 만나도 아는 채 하지도 않고 눈길도 주지 못했었다. 정신연령이 머슴아들보다 빠른 가시나들은 이미 이성에 대하여 무엇인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반면 머슴아들은 아직도 철부지 애들에 불과했다. 그 날 이후 거리에서 만나도 서먹함이 없었다. 말도 걸고 웃음으로 인사를 하곤 했다. 사랑방에 모여 야외전축을 틀어놓고 춤도 추었다. 무덤에서 싹이 트기 시작한 이성에 대한 동경은 아이들의 가슴속에 깊숙이 자리박아 세월이 흐른 지금도 진한감동으로 다시 살아나곤 한다.

 

“서울자랑을 늘어놓던 친구야 미안하다. 네가 한 서울자랑이 대부분 사실이었었는데 그 당시 널 사기꾼과 거짓말쟁이로 몰아 부친 것을 생각하니 정말 미안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산골 소년들의 무지가 빚어낸 소치라고 생하고 너그럽게 이해해주기 바란다.”

 

“무덤까지 쫒아 온 가시나 들아! 어디서 무엇 하며 살고 있니. 단말머리를 휘날리며 따라 올수 있는 용기는 어데서 나온 것이니. 너희들이 계속하여 쫒아 올 때 머슴아들은 큰일 나는 줄 알았다. 지금 생각하니 그렇게 큰일도 아닌데 그 당시에는 왜 그렇게 가슴이 두근거렸는지.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밤새껏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잘들 살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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