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날아침 울어야 했던 막내의 설움
동장군이 물러갔다. 삼한사온을 무색케 했던 한파가 우리고유의 ‘설’ 명절을 앞두고 무릎을 꿇었다. 아파트 지붕보다 더 높이 솟아 있는 굴뚝에 물이 흐르고 있다. 시베리아벌판에서 몰아친 찬바람에 얼어붙었던 고드름이 따스한 햇볕을 받아서 서서히 모습을 잃어 가고 있다. 못 견디게 불었던 칼바람도 하루 새 끝이 무디어 존재 가치를 상실했다. 온화한 날씨에 바람을 가르고 달리는 고향 길, 넉넉한 연휴 덕에 사라져 갔던 여유가 아름답게 되살아나지 않을까 한다.
설날 아침 나는 울었다. 즐거워야 할 설날 아침 아들이 눈물을 빼고 있으니 엄마 또한 얼마나 속상했겠는가. 나의 생각과 정 반대의 일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일 년에 두 번 새 옷과 새신을 신는 날이 추석과 설날이다. 대목장장날 엄마는 때때옷과 검정고무신을 사왔다. 설날 아니면 절대 입고 신을 수도 없다고 하면서 장롱 깊숙이 감추어 열쇄를 채웠다. 이제나 저제나 설날만을 손꼽아 기다릴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때 그 시절은 왜 그리 하루하루가 멀게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농경사회는 돈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쌀이나 곡식을 내다 파는 방법 외엔 아무 것도 없었다. 오직 육체노동으로 얻어진 질 좋은 곡식은 돈을 만들기 위해서 먹을 수가 없었다. 동네에 한두 집 부자를 빼고는 누구나 먹고 사는 일에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움직이지 않으면 굶어야 했다. 주전부리를 위해서는 산과 들에 뛰어 다니면서 열매를 따거나 뿌리를 캐먹어야 했다. 이렇게 어려운 시절에 설빔에 대하여 투정을 부리는 자식이 얼마나 야속했겠는가. 고맙다고 넙죽 절을 해도 시원찮을 판인데 투정을 부리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이다.
난 막내다. 귀여움도 받았지만 설움도 많았다. 형은 새 옷을 입었지만 난 항상 물려받아 헌 옷을 입어야만 했다. 형 옷은 누더기가 다 된 옷도 버리지 않고 내가 자라기만 기다렸다가 여지없이 내 몸에 걸쳐지곤 했다. 물질이 귀했던 시절에 버릴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기워 입고 꿰매 입고 더 이상 입을 수 없도록 해지면 모았다가 이불을 만들었다. 바닥이 다 달아 더 이상 신지 못하는 고무신은 고물장수가 오면 비누와 바꾸었다. 망자의 옷과 소품을 빼고는 모든 것이 재활용되고 돈이 되었다. 엄마들은 재활용에 귀재였던 것이다.
바짓가랑이는 너무 길어 방바닥에 끌리었다. 팔소매 역시 손을 덮고도 남아 흔들리었다. 고무신은 너무 커서 헐렁했다. 이대로 집밖을 나갔다가는 아이들에게 놀림 받을 것이 뻔했다. 그렇다고 설날 헌옷을 입을 수는 없는 것이다. 엄마는 바늘과 실을 꺼내어 불이 낳게 긴소매와 바지를 줄였다. 고무신은 어쩔 수 없어 그냥 신어야 했다. 엄마는 자식의 신체치수를 모르는 것이 아니다. 막내는 더 이상 물려줄 동생이 없기 때문에 여러 해 동안 옷이 다해지도록 입히기 위해서는 넉넉한 옷을 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코흘리개 막내는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사왔다고 투정을 부리고 눈물을 흘리면서 서럽게 울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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