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2월 14일, 경기도 포천군 이동에 사는, 셋째 처제 집에 맑은 공기도 마시고 페인트 냄새가 폴폴 나는 방금 뽑아 온 달구지를 자랑도 할 겸해서 초보임에도 불구하고 와이프와 함께 집을 나섰다.
포천에 도착하기까지는 공포의 연속이었다. 브레이크를 잡을 때마다 옆에 있는 와이프가 저보다 더 화들짝 놀라곤 했다. 시내에서 몇 번 연수하고 장거리운전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등에서는 연신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우여곡절 끝에 물 좋고 공기 좋은 포천의 이동면 어느 산골 초가집에 도착하였다. 이 초가집이 어여삐 이쁜 셋째 처재가 둥지를 튼 보금자리였단 말인가. 소시 적 우리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던 정감이 넘쳐나는 그림 같은 그런 집이었다. 겉모습은 초가집이었지만 실내는 궁전이었다. 내부를 적당히 고치고 부치고 치장하여 부유 충 거실 못지않게 꾸며놓았다. 마루를 개조한 거실에는 커다란 오디오가 있었고, 양쪽 소리통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웅장하기가 천둥소리였다. 평소 접해보기 어려운 터라 눈이 휘둥그레져 오디오의 웅장한 소리에 압도당했다. 물 좋고 공기 좋은 양지바른 언덕에서 아기자기하게 꾸미고 사는 처제가 잠시 부럽기도 하였다.
이동 하면 물 좋기로 유명하지만 갈비 또한 명성이 대단하기로 정평이 나있지 않은가. 갈비 맛을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인근에 있는 음식점에서 소주와 곁들여 평소의 두 배의 갈비를 맛나게 먹어치웠다. 음식점 앞마당의 인공폭포는 영하의 날씨에 자연스럽게 얼어붙어서 보기가 좋았다. 그곳에서 진한 자판기 커피를 나누어 마시고 어두컴컴한 길을 걸으면서 시골의 정취를 마음껏 느낄 수가 있었다.
갈비 집에서 먹었던 소주로 인하여 적당히 취기가 올라왔다. 간만에 한번 놀아볼까 하고 기타를 찾았다. 거실에 있는 오디오에서는 노래방기능까지 있었다. 도시가 아니기 때문에 약간의 소음정도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간주하고 노래반주에 맞춰 목이 터져라 불렀다. 얼마나 불렀을까 도시의 삶에 찌들었던 스트레스가 확 달아날 무렵, 이웃집에서 항의가 들어왔다. 그림 같은 초가집에서의 광란의 축제는 더 이상 진행 할 수가 없었다. 시간은 꽤나 흘러 늦은 시간, 내일 아침 다 함께 온천에 가기로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잠자리가 불편하기도 하고 새벽잠이 없는 나는 제일먼저 일어났다. 자고 있는 와이프와 처제를 깨우고 온천장에 가자고 했다. 둘째를 임신하여 만삭이 다된 처제는 부끄럽다면서 머뭇거렸다. “깨끗하게 목욕하고 맑은 마음으로 출산하는 것도 좋지 않은가”억지주장을 펴서 잠이 많은 동서를 제외하고 나와 와이프 그리고 처제 셋이서 온천장에 갔다.
두 시간을 약속하고 남탕과 여탕으로 나누어서 들어갔다. 부드러운 물결 속에 푹 빠져버린 나는 온탕 냉탕을 거쳐서 하늘이 뻥 뚫린 노천탕에서 지그시 눈을 감고 혼자만의 기분을 만끽했다. 머리는 시원하고 아래는 따뜻하고 정말 좋았다. 그런데 얼마 후 누구를 찾는다는 방송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대수롭지 않게 그냥 넘겨버렸다. 다시 한번 방송이 흘러나왔다. 나를 찾는 소리가 분명했다. 아니 이 아줌마들이 미쳤나, 평소 두 시간 약속하고 들어가면 세 시간 넘어서 나오는 점씨들이 뭔 일인가 싶어 궁금했다. 대충 물기를 닦고 나와 보니 처제와 와이프는 구세주를 만난 듯 빨리 의정부에 있는 병원으로 가자는 것이었다. 배속에 있는 아기가 온천수에 놀랐는지 발길질을 심하게 하는 바람에 예정에 없었던 진통이 왔다는 것이었다. 급했다. 의정부 병원까지는 아무리 빨리 가도 한 시간 이상 걸리는 데 보통 큰일이 아니었다. 급히 집에서 자고 있는 동서에게 연락하여 출산에 필요한 물건을 준비토록 하였다. 달구지를 끌고 중간에서 동서와 합류하여 의정부 병원으로 달리고 달렸다.
가는 길은 험난했다. 진통소리는 점점 커져오고 빨리 달릴 수는 없고 눈앞이 캄캄했다. 더욱이 아기가 자궁의 위치를 잘못 잡아 거꾸로 있는 상태에서 조만간에 수술하기로 예약이 되어있었던 것이었다. 시간이 지체되면 생명이 위태로운 순간이었다. 정상적인 분만도 어려운데 더군다나 거꾸로 있는 아기가 가는 길에 나온다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아이고 죽겄네. 형부 빨리 좀 가자고요”빨리 가자고 연신 재촉을 하지만 초보이고 초행길이고 해서 빨리 달릴 수가 없었다. 가슴은 쿵쾅 뛰고 등줄기에서 흐르는 땀방울로 폭포수가 다 되었다.
신호등을 무시하고 달린 끝에 아무 탈 없이 의정부 병원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다급한 나머지 응급실을 경유해서 곧바로 산부인과로 올라갔다. 긴급 상황이었다. 의사선생님은 상태를 보더니만“이제 오시면 어떻게 합니까.”하면서 난리를 쳤다. 병원에 도착하는 순간 아기의 발이 자궁 밖으로 나와 있었다는 것이다. 이윽고 보호자의 동의 서명을 받고나서 마취를 하고 수술실에 들어갔다. 밖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던 우리는 만에 하나 잘못되면 어쩌나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간호사 선생님이 나와서는 딸을 순산 했다고 했다. 이게 무슨 소린가 마취해서 수술실로 들어갔는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자초지정을 들어보니 수술하기 전 이미 자궁 밖으로 나와 버린 발 때문에 수술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자연분만으로 유도하여 아무 탈 없이 순산을 했다는 것이다.
하늘이 도왔다. 이제야 큰 한숨을 쉬고 마음의 안정을 되찾을 수가 있었다. 나의 제의로 온천에 가서 긴급 상황이 벌어졌는데, 잘못되었으면 평생 죄책감에 무거운 삶을 살아야 했었을 나를 생각하니 천만 다행이었다.
기분전환 차 모처럼 시골 나들이에 긴장의 연속이었지만, 수술을 하지 않은 바람에 병원비를 많이 절약할 수가 있었고, 그때 처제를 병원에 싫고 간 달구지는 큰 사고 없이 지금도 전국을 쌩쌩 누비며 잘 달리고 있으며, 짧은 순간 긴장의 연속인 가운데 태어난 조카‘유진’이는 노래도 잘하고 마음씨도 착한 훌륭한 어린이로 자라고 있어서 나에게는 인생에 있어서 흔치 않은 좋은 경험을 한 것 같다.
2006년 1월 18일 kbs 2라디오 정한용 왕영은 편지함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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