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취월장한 아내의 축구 해설
운명의 날이 다가왔다. 가능성이 1%라고 떠들어 대는 사람들이 밉기까지 하여 ‘볼 것인가 말 것인가’를 놓고 갑론을박 포털사이트를 뜨겁게 달구었다. 어떠한들, 월드컵을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결국, 독일과의 경기에서 두골을 넣는 귀염을 토한 끝에 승리하였다. 16강은 좌절되었지만 언저리 타임의 두골은 한국 및 세계 축구사에 영원히 기록될 것이고 회자될 것이다.
맨 정신으로 보기에는 심장이 견뎌 내지를 못할 것 같아 가까운 식당에서 소주와 고기 몇 점으로 저녁을 해결했다. 배고프다는 아이들 역시 축구를 볼 생각에 즐겁다며 잘 익은 고기를 폭풍 흡입했다. 알코올 기운이 전신에 퍼지면서 마음이 안정되고 기분이 급상승했다. 이제 축구가 시작되기만을 기다리면 된다.
아내는 축구가 시작할 무렵에 귀가했다. "급작스러운 회식 약속이 잡혀 빠질 수도 없고 해서 밥만 먹고 부리나케 달려왔다."라며 “어차피 질 것인데 힘 빠져서 보겠어” 아내는 김빠지는 소리를 하면서 대표 팀을 얕잡아 보았다. “모르는 일이지. 항상 이변이라는 것이 있잖아” 난 가능성이 희박할지라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었다. 아들은 옆에서 경우의 수를 분석하느라 인터넷 검색에 열중이다.
드디어 휘슬이 울리면서 독일과의 예선 3차전이 시작되었다. 밀고 밀리는 공방전이 지속되었다. 세계 랭킹 1위 독일과의 한 판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파상공세로 밀어붙이는 독일의 돌파력은 혀를 내두를 정도로 위대했다. 간간이 기습공격으로 맞서는 대표 팀은 강인한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었다.
“그런대로 잘 하네. 초반을 넘었으니 다행이네. 사실 초장에 꼴을 먹는 순간 허둥대다가 연속골로 망신을 당하는 것이 허다하지. 일단 절반은 성공한 것 같아” 축구 규칙을 전혀 몰랐던 아내는 스웨덴, 멕시코 전을 관전한 이후로 반 전문가가 되었다. “골대를 맞추면 진다는 속설이 있는데, 독일 우리한테 지는 것 아냐” 아내의 말이다. “그런 말도 알아? 이제 축구 해설가로 나서도 되겠어.” 엄지 척을 내보이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뭐야, 스웨덴이 한 골을 넣었어.” 아내는 실망한 나머지 “이제 1%의 가능성도 사라지고 말았네” 라며 혀끝을 찼다. 독일이 똥줄 타게 생겼다. 전반에 워낙 많이 뛴 독일 선수들은 패스 미스가 잦았다. 돌파력도 많이 떨어졌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지만 투지만큼은 지난 두 번의 경기에서 보지 못했던 강인함이 엿보였다.
전후반이 끝나고 언저리 타임이 시작되었다. 무려 6분이나 주어졌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대표 팀은 코너킥으로 날아간 골이 문전에서 혼전을 거듭하는 사이 김영권의 발에 의하여 골네트를 흔들었다. 잠시 오프사이드 논란이 있었으나 골로 인정되었다. “골인, 골인이다.” 아내와 나 그리고 아들의 환호성에 놀란 공주가 방에서 나오며 “뭔 일 있어” 하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이어 손흥민의 노마크 찬스에서 한 골을 더하여 2-0 완승을 거두었다.
독일을 이기고 보니 지난 두 경기가 여간 아쉬운 것이 아니다. 축구뿐만 아니라 세상만사가 다 그렇다. 여하튼 간에 독일 전에서 대 망신을 당할 것이라 생각했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보란 듯이 승리를 안겨주었다. “개 발에 땀났나 봐” 아내는 뭔 뜻인지 모르는지 “그 소린 또 뭔 소리여”하면서 안방으로 사라졌다. 어젯밤, 승리의 여운이 거실에 가득하여 좀처럼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