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얘기

건조기 타령

말까시 2018. 5. 24. 08:06

◇ 건조기를 사자고 들들 볶는 아내

 

신록이 절정에 이르렀다. 산과 들은 푸른 녹색으로 빈틈이 없다. 아카시아 지고 밤꽃이 고개를 내밀었다. 민들레는 홀씨 되어 사방에 흩어진다. 그 모양이 솜사탕처럼 희고 멋지다. 낮 기온은 따뜻하지만 밤공기는 차다. 여름의 문턱을 넘기가 고된가 보다. 밤만 되면 살며시 다가오는 개구리소리에 TV를 끄곤 한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커다란 웃음소리가 나쁘지 않다.

 

아내는 건조기 타령으로 목이 쉴 정도다. 이사하기 전부터 부르기 시작했던 건조기 타령이 이제 도가 지나쳐 들들 볶아 댄다. 나물이야 볶으면 맛이 더하지만 입으로 볶아대는 타령은 쓰고 거슬린다. “그렇게 타령만 하지 말고 사구려” 별로 필요성을 못 느껴 반대했었다. “자기가 좀 보태줘야지. 요즘 돈 쓸데가 많아 곳간이 텅텅 비었단 말이야” 아내는 나의 호주머니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전에 살던 집에서는 빨래를 건조하는 데 있어서 불평불만이 없었다. 드럼세탁기가 건조기 겸용이었지만 전기료가 많이 나온다는 이유로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던 아내가 변했다. 건조기의 장점을 어디선가 들은 후부터는 건조기 타령을 멈출 줄 모른다. 가끔 수건에서 캐케한 냄새가 나서 항의를 하면 바로 치고 들어온다. “거봐. 건조기가 있으면 빨리 말라 냄새가 안 나거든요. 빨랑 사러 가자. 응, 자기야” 난 빨래를 잘 못하여 나는 냄새 아닌가 싶어 반문하지만 절대 아니란다.

 

건조기는 세탁기보다 전기 소비량이 많다. 이사 오면서 가전제품이 늘었고 용량 자체도 커서 전기료가 꽤나 나온다. 날씨가 더워지면 에어컨도 가동해야 하는 와중에 세탁기 건조기까지 풀가동하다가는 전기료 폭탄이 나오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요즘 건조기는 절전형이라 많이 안 나오거든요” 어디서 들은 정보인지는 모르지만 건조기의 장점을 조목조목 나열했다.

 

공부를 해보았다. 열풍으로만 건조를 하는 것으로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제습 기능이 있어 적은 열풍으로도 말릴 수 있어 옷감의 손상을 방지한다고 한다. 제조사 입장에서는 장점만을 부각했지 단점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전기료 역시 저렴하다고 하지만 이것저것 가전제품이 많은 가정에서는 누진제에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안방 배란다 천정에는 빨래 건조대가 부착되어 있다. 버튼을 조작하면 바람도 나온다. 수건과 같은 면 종류의 빨래는 쉽게 마르지 않는다. 통풍이 잘 안 되어서 그런지, 아니면 햇볕이 부족해서 그런지, 여하튼 간에 빨래를 널 때마다 투덜거리는 아내의 짜증 섞인 목소리를 더 이상 듣기 싫다. 수건에서 나는 냄새도 싫다. 지금 상태로는 구조상 빨래를 뽀송하게 말릴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 같다.

 

이번 주말 시장조사차 할인매장에 나가보기로 했다. 아내의 성격상 저가의 제품에는 눈길을 두지 않을 것이다. 여차하면 거금이 날아갈 판이다. 아내는 꼭꼭 숨겨 놓은 비자금을 노리고 갖은 모략을 꾸밀지도 모른다. 코맹맹이 소리로 앵앵거리며 달려들어도 절대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입주시 잔금 치를 때 죽는 소리를 하는 바람에 좀 털린 것이 여간 아까운 것이 아니다. 동행은 하지만 비자금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초전박살 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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