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원한 열무김치 담기
따스한 봄이 오면서부터 부쩍 장 보는 횟수가 잦아졌다. 안 보이던 푸성귀도 등장했다. 겨우내 김장김치로 길들여진 입맛이 질릴 만도 하다. 시원한 열무김치가 먹고 싶어졌다. 아내에게 “열무, 얼갈이가 나왔으니 한번 담아 보자"라고 주문했지만 “나 김치 담을 줄 모릅니다”라며 거절한다. 목마른 사람이 샘을 판다고, 직접 담아보기로 했다.
마트에 나가보니 싱싱한 채소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잎이 무성한 열무, 얼갈이도 싱싱해 보였다. 너무 크지도 않고 그렇다고 작지도 않은 열무 한 단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시원한 맛을 더하기 위하여 쪽파도 추가했다. 풋고추는 작년 가을에 시골에서 모셔와 냉동실에 보관한 것이 꽤나 된다. 홍고추는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없었다. 아내는 마른 고추를 불려 사용해보자고 했지만 내키지 않았다.
장바구니가 무겁다. 이것저것 주워 담는 아내의 손이 바삐 움직이다 보니 수북이 쌓였던 것이다. 필요한 것을 머릿속에 그려 넣고 집을 나서지만 마트에 들어가는 순간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다. 특히, 아내는 마트를 두어 바퀴를 돌며 샅샅이 뒤진다. 이것도 집어보고 저것도 집어 보는 습관 때문에 시간이 여간 지체되는 것이 아니다. 안목이라도 넓히자는 전략전술이라고 항변하지만 따라다니는 포터는 짜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바코드를 찍어 결제하기까지의 시간도 상당하다. 줄을 서야 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마일리지 적립을 위하여 입력하는 것 말고도 상품권이라도 있으면 지체되는 시간이 꽤나 된다. 결제 수단이 전산화되었다지만 물건 고르는 만큼 계산하는 것도 장난이 아니다. 더 짜증 나는 일도 있다. “손님 오만 원만 채우면 사은품을 받을 수 있습니다.”라는 말에 쏜살같이 달려가는 아내의 행동에 “잘했어”라고 장단을 맞추어할지 의문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열무를 다듬어 소금물에 절였다. 1시간 정도 절이면 김치를 담기에 안성맞춤이다. 소금이 절여지는 사이 밀가루를 풀어 풀죽을 만들어 놓았다. 마늘도 다지고 생강도 두드려 조각을 냈다. 풋고추는 물에 담가 녹였다. 쪽파도 다듬어 소금을 뿌려 숨을 죽였다. 까나리액젓과 새우젓을 준비했다. 열무김치에는 설탕보다는 당원을 넣는 것이 좋다고 하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믹서에 풋고추, 마늘, 생강, 양파를 넣고 거칠게 갈았다. 홍고추 대신 고춧가루를 조금 넣어 색을 입혔다. 매실액을 넣어 새콤함을 더했다. 풀죽과 섞어 양념을 완성했다. 채반에서 물이 빠진 열무와 쪽파를 넣고 버무렸다. 매운 기운이 눈을 자극, 눈물이 핑 돈다. 한나절만 익혔다가 냉장고에 보관하는 것으로 열무김치 담는 것은 끝난다.
딱 하루 지났을 뿐인데 국물이 시원하다. 아삭하게 씹히는 열무도 간이 적당하게 배어 푸성귀 특유의 향을 냈다. 국수라도 비벼 함께 곁들이면 그 맛이 어떨까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순간 침샘이 폭발한다. 아이들은 달달하고 기름진 음식에 길들여져 김치를 멀리하지만 아내와 난 열무김치에 푹 빠져 봄맛을 제대로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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