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얘기

푸르지오 24시

말까시 2018. 3. 20. 11:34

◇ 바쁘게 돌아가는 푸르지오 24시

 

아내의 핸드폰에서 알람이 울리는 순간 눈을 뜬다. 6시 10분이다. 아내는 무당춤을 춘다. 누워서 말이다. 손과 발을 위로 쳐들고 마구 흔들어 댄다. 다음 동작은 민망하다. 누운 채로 엉덩이를 밀어 올려 곡선을 만들고는 한참을 있다가 하강, 다시 올리기를 반복한다. “자고 일어나는 순간 스트레칭을 해야 건강한 하루를 보낼 수 있다."라며 적극 권장하지만 동작이 경망스럽기도 하고 우스꽝스러워 따라 하지 않는다.

 

아침을 준비하는 틈을 이용하여 샤워를 한다. 날 면도하는 시간 빼고는 전광석화, 채 5분을 넘지 않는다. 드라이로 머리를 말리고 에센스를 바르고 젤로 각을 잡는다. 머리 손질이 끝나는 순간 식탁에 반찬을 놓는 소리가 들린다. 얼굴에 스킨과 로션을 바르고 서둘러 식탁에 앉아 비록 어제 먹었던 반찬이지만 맛있게 먹는다.

 

이빨 청소는 대충 하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선다. 그동안 아내는 설거지를 마치고 나서 아들을 깨워 학교 갈 준비를 한다. 아들이 아침을 먹는 사이 샤워를 하고 화장을 한다. 파운데이션을 바르고 아이라인을 긋고 립스틱을 발라 모양을 내는 시간이 식사시간보다 곱절은 길다. 바쁜 나머지 겉옷과 백을 들고 해찰하는 아들을 재촉한다. 아들을 봉화산역에 내려주고 일터로 달려가는 아내는 하루 종일 정신이 없다.

 

공주는 한밤중이다. 언제 일어나는지는 모른다. 집밥을 싫어하는 공주는 거의 사 먹는다. 독서실에서 살다시피 하는 공주는 얼굴 보기가 힘들다. 책과 씨름하는 내내 엄청난 에너지가 소비되는 것 같다. 아내의 휴대폰에 수시로 결제 메시지가 뜬다. 뭐라 할 수 없다. 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기 때문에 한눈팔지 않고 그것에 올인 하는 것에 박수를 보낼 뿐이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오후 8시쯤이면 귀가한다. 아들도 마찬가지다. 아내는 이미 도착하여 저녁 준비에 여념이 없다. 국을 끓이고 새로운 반찬이 올라온다. 아침과는 딴판이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하얀 쌀밥은 아무 반찬과도 잘 어울린다. 먼저 국물을 한 모금 마셔 입을 축인다. 쌀밥을 생김에 싸서 간장을 찍어 입에 넣는 순간 단물이 줄줄 흐른다. 방금 한밥과 찬밥과는 맛의 차이가 하늘과 땅이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면 원두를 갈아 거피를 내린다. 설거지를 끝낸 아내는 드라마를 보기 위해 소파에 앉는다. 그 순간 거피를 대령한다. 갈아 마시는 커피가 귀찮기도 하지만 흡족해하는 아내를 생각하면 마다 할 수 없다.

 

안방으로 쫓겨난 나는 팔 굽혀 펴기를 한다. 아령으로 팔운동 역시 빼놓지 않는다. 잠시 책을 보다가 졸리면 잔다. 9시 뉴스가 시작되는 즈음에서 아내가 부른다. 산책을 가자는 것이다.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걷다 보면 한 시간이 금방이다. 마트에 들러 먹거리를 장만하고 들어와 샤워를 한다. 아주 상쾌하다. 이때부터 TV 채널권은 나에게 넘어온다. 아내는 다 된 빨래를 툴툴 털어 베란다에 널고, 양말과 속옷은 이동식 빨래건조대에 가지런히 걸어 놓는다.

 

11시에 임박해서 출입문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린다. 공주다. 쏜살같이 달려가 중문을 열고 “오늘도 고생했다”라고 반갑게 맞이해준다. 허기진 모양이다. 먹을 것을 찾자마자 입에 욱여넣는다. 대화를 나누고 싶지만 원치 않는 것 같다. 하루 종일 책과의 씨름하느라 얼마나 피곤하겠는가. 공주가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고 안방에 들어와 꿀잠을 만끽하고 있는 아내 옆에 누워 잠을 청하는 것으로 하루의 일과가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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