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의 목소리
날씨가 을씨년스럽다. 4월에 눈이 내리더니 태풍보다 드센 바람이 불고 있다. 창문이 덜컹거리는 소리가 여간 거슬리지 않는다. 기온이 뚝 떨어져 꽃들이 벌벌 떨고 있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았던 꽃망울이 문을 꼭꼭 걸어 잠갔다. 나뭇가지에 살짝 내민 움은 성장을 멈추고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 갑자기 엄마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진다.
전화번호를 눌러 신호를 보냈다. 받지를 않는다. 거동이 불편하여 밖에 나갈 리가 없는데 이상하다. 활동 범위가 안방, 부엌, 화장실이 전분데 왜 전화를 받지 않을까.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밀려온다. 등줄기가 싸늘해지며 소름이 돋았다. 끊고 다시 걸어볼까 하다가 좀 더 신호를 보냈다.
“여보세요” 낯선 목소리가 들려온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일전에 뇌출혈로 쓰러졌을 때도 이웃집 아주머니가 전화를 받았었다. 그때 얼마나 놀랐는지, 그 이후로 신호음이 길어진다든지 수화기에서 엄마가 아니면 가슴이 두근두근 머리가 쭈뼛, 등골이 오싹해진다. 아무 일 없는 것을 확인하기까지 숨이 가쁘고 긴장된 나머지 식은땀을 흘리기도 한다.
“누구세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카랑카랑 목소리가 쏜살같이 달려왔다. “아, 네. 요양보호사입니다.”, 그분의 목소리는 맑고 깨끗했다. “아, 그러세요, 고생이 많네요. 전 둘째 아들입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나서 그분의 이야기를 들었다. “방금 목욕을 하고 나와 머리를 말리고 있다."라는 요양보호사는 “어머니가 몸은 불편해도 총기는 그대로 살아 있어 대화를 나누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고, 방문할 때마다 먹을 것을 내주는 고마운 분이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잠시 후 엄마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미는 있고”, 큰 한숨을 내쉰다. “네 있어요.”, “아이들도 있고”, 숨을 가삐 몰아쉰다. 엄마는 가는 귀도 먹어 잘 듣지도 못한다. 말하는 것도 숨이 차서 힘들어한다. “네 일요일이라 집에 있어요.” 목소리를 높여 말하기가 무섭게 “밥은 먹었냐? 안 먹었으면 어서 먹어라. 배곯지 말고 살아라.” 항상 물어보는 레퍼토리는 한결같다. 안부를 물어 보고는 마무리로 “그래, 느그덜만 잘 살면 됐지. 편히 쉬어라” 마지막 말을 했음에도 수화기를 내려놓지 않는다. “엄마 들어가세요.” 다시 이야기해보지만 역시 마찬가지다. 어쩔 수 없이 종료 버튼을 누르지만 편치 않다.
요즘 요양보호사가 아들보다 낫다고 한다. 처음엔 이것저것 물어봐서 귀찮았지만 자주 보다 보니 이제는 언제 오나 손꼽아 기다려진다고 한다. 일주일에 한 번씩 방문하여 청소해주고 목욕까지 해주니 여간 고마운 것이 아니다.
하루 종일 누구와 대화를 나눌 수도 없는 독거노인에게 있어서 요양보호사는 천사 같은 존재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가끔 눈물도 나오고 웃음이 나와 엉덩이에 뿔도 난다고 한다. 자식 역할을 톡톡히 하는 요양보호사를 잘 만나는 것도 복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자식들은 든든한 우군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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