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얘기

방귀

말까시 2018. 2. 7. 10:33

◇ 지독하게 향기로운 방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어느 날 밤, 자다가 실례를 하고 말았다. 저녁 먹은 것이 배탈 나서 서둘러 해결하려 했지만 괄약근이 풀어지면서 밀고 나온 것이다. 방안은 아버지, 어머니, 형, 누나 모두 한 이불을 덮고 자고 있었다. 악취가 진동을 했다. 아무도 모르게 처리해야 했다. “똥 꼈냐?”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니” 방문을 열고 나갔다. 우물은 골목 어귀 멀리에 있다. 뒷동산에 올라 풀을 뜯어 닦아내고 조용히 들어와 잤다.

 

물로 씻지 않고 뒤처리 한 것이 문제였다. 누구보다도 민감하고 예민한 엄마는 방귀가 아니란 것을 직감했다. 이불 속에 있는 나를 데리고 부엌으로 데리고 가서 물을 적셔 닦았다. 죄를 지은 나머지 아무 말도 못하고 혼날 것에 벌벌 떨었다. 방으로 들어온 엄마는 장롱 속에서 옷을 꺼내 갈아입혀 주었다. “어서 자거라” 안도의 한숨을 내쉬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잠을 청했다.

 

청순하고 곱디고웠던 아내가 어느 날부턴가 대놓고 방귀를 뀌었다. 즐겁게 즐겨야 할 저녁 만찬 자리였다. “엄마는 참네” 공주는 코를 막으며 비위가 상한 나머지 얼굴을 찡그렸다. 아들은 미소를 지으며 어이없다는 듯 웃고 만다. 대포 소리처럼 크게 뀌는 방귀는 냄새가 부드럽다. “야! 냄새 하나도 안 나는 데 뭔 코를 잡고 그러니” 대수롭지 않는 듯 맛있게 먹고 있는 아내가 귀여웠다. 공주는 비위가 상했는지 일그러진 표정으로 숟가락을 놓고는 일어나 지 방으로 사라졌다.

 

부부가 방귀를 트는 순간부터 대화는 자유롭게 이루어진다. 음담패설도 잘 받아넘긴다. 어려운 부탁도 스스럼없이 한다. 사회 친구 역시 말을 트는 것으로 우정이 각별해진다. 우정이 남다르다 보면 방귀 정도야 대포 소리를 내든 피리 소리를 내든 개의치 않는다. 핏방귀만 아니면 말이다. 남모르게 슬며시 뀐 방귀는 냄새가 고약하다. 누가 뀌었냐며 범인 잡기에 나서지만 분위기만 험악해진다.

 

너무나 춥다. 이불을 뒤집어쓰지 않고는 잠을 잘 수가 없다. 아무리 단열이 잘 되었다 해도 난방비가 걱정이 되어 마음대로 가동할 수가 없다. 찬 공기가 들어오지 않도록 이불을 둘둘 말아 기밀을 유지했다.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잠을 청한다. 아내 역시 철옹성을 치고 접근을 금지한다. 미라가 되어 깨보면 아침이다.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라고 했는데 ‘벌써 아침이라니’ 뭔가 아쉽다는 생각이 뇌리에 스친다.

 

엊저녁 텔레비전을 늦게까지 시청하다가 졸음이 밀려와 안방으로 들어왔다. 아내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슬그머니 이불을 들치고 들어가 누웠다. “앗, 이것이 무슨 냄새야” 밀폐된 공간에 뿌려 놓은 지독한 향기는 코를 자극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깬 아내는 이불을 끌어당기며 "잠 좀 잡시다."를 연발하며 투정을 부린다.

 

“이봐요. 마나님 방귀를 뀌었으면 이불을 들어 환기를 시켜야지, 그렇게 둘둘 말고 자면 어쩌란 말입니까.” 자다가 깬 아내는 오리발을 내밀면서 “절대 아닙니다.”를 외치고 등을 돌려 칼잠을 잔다. 잠결에 나온 방귀를 인식한다는 것이 무리인 것은 사실이다. 속이 좋지 않은지 밤새도록 바이오가스 생산 공장은 가동을 멈추지 않았다. 밀폐된 공간에 그대로 발산한 지독한 향기는 청정지역인 콧속을 오염시켜 헐게 했다.

'삶의 얘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목장  (0) 2018.02.13
바닥난 배터리  (0) 2018.02.09
설거지의 달인  (0) 2018.01.31
탈탈 털린 비상금  (0) 2018.01.23
독감  (0) 2018.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