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얘기

설거지의 달인

말까시 2018. 1. 31. 17:36

◇ 뉴스가 끝날때까지 설거지하는 마나님

퇴근이 임박했을 때 드르륵 카톡이 왔다. 아내였다. “땡 하고 가서 두부김치 하삼” 밖에는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술 한 잔도 못하는 맹물파가 막걸리라도 한잔하려고 그러나’ 아내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는 노릇, 눈길을 해치고 무사히 귀가하여 돼지 목살로 두부김치를 만들어 만찬을 즐겼다.

 

싱크대에는 먹다 남은 짜장밥이 말라비틀어져 있었다. 아들의 소행이다. 물에 담가 놓으면 설거지하기가 수월할 텐데, 백날 이야기해도 소용이 없다. 이곳저곳에 널브려져 있는 컵도 한두 개가 아니다. 음식을 하려던 마음이 한순간에 사라진다. 일단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열을 받기까지 설거지를 했다. 미끌 거리는 것을 제거하기 위해 세제를 풀고 여러 번 문질렀지만 뽀드득 소리가 나지 않는다. 물 사용량을 줄이기 위해 그대로 멈추었다.

 

벌겋게 달구어진 프라이팬에 목살을 올렸다. 노릇노릇 익어갈 무렵 가위로 잘게 썰었다. 목살에서 나온 기름과 오일이 뒤범벅이 되어 흥건했다. 후추를 뿌리고 고추장을 풀었다. 두어 번 뒤적이다가 가장자리로 내몰고 김치를 투하 볶았다. 맛있는 냄새가 진동을 한다. 생강도 조금 넣고, 마늘은 통마늘 그대로 넣었다. 고기와 김치를 한데 모아 볶았다. 설탕을 한 숟갈 넣어 윤기를 더했다. 마지막으로 양파를 채 썰어 넣었다. 센 불로 살짝 익혀 완성했다.

 

“아빠, 머해” 아들놈이 구수한 냄새에 이끌리어 나와 있었다. “보면 모르니. 네가 좋아 하는 두부김치다” 눈알을 굴려 관찰하더니만 입맛을 다신다. “엄마 늦게 와”라고 묻는다. 아내가 늦을 때면 특식을 만들어 차려주곤 했던 것이 학습되어 으레 주방에 있는 나를 볼 때면 묻는 말이다.

 

밥솥을 열어 보니 흰쌀밥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일단 공기에 조금씩 담았다. 김치도 꺼내고 시골에서 공수해온 파래김치도 꺼냈다. 순간 ‘땅동’하는 것이 아닌가. 쏜살같이 달려 중문을 열어 환영했다. “두부김치 해놓았어”라고 묻는 아내는 입이 반쯤 열려 있었다. “물론이지. 어서 옷 벗고 자리에 앉으삼” 아내는 세수도 하지 않고 바로 나와 식탁에 앉았다. “맛있다”를 연발하며 한 공기 뚝딱해치웠다.

 

저녁을 마치고 설거지에 들어간 아내는 좀처럼 끝낼 줄 모른다. 중요한 뉴스 시간에 떨거덕 거리는 소리가 여간 거스른 것이 아니다. 뭐라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고개를 돌려 어떻게 설거지 하나 유심히 살펴보았다. 내가 설거지 한 그릇을 다시 꺼내 박박 문지르고 있었다. 세제를 풀고 다시 문지르고 헹구기를 반복하고 나서 물기가 빠지기를 기다렸다가 일일이 행주로 닦은 다음 선반에 올려놓는 것이 아닌가. 칼과 가위 심지어 숟가락까지 물기를 닦아 냈다. 밥공기는 공기대로 국그릇, 프라이팬 등 제자리를 차지한 것을 확인하고는 음식물을 탈수하여 비닐에 넣어 봉인 후 끝맺었다. 그 시간이 뉴스를 끝날 때까지 이어졌다. 난 5분이면 끝낼 것을 50분을 넘게 한 이유를 이제야 알게 되었다.

 

이쯤 되면 설거지의 달인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가족의 건강을 위해 위생 개념이 투철한 아내는 물값이 좀 나와도 설거지만큼은 확실하게 해야 한다는 의지가 확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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