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얘기

독감

말까시 2018. 1. 13. 11:48

◇ 독감

 

오슬오슬 몸이 떨리고 머리가 띵하니 정신이 없다. 아내의 몸속에 들어온 감기 바이러스가 만들어 낸 증상이다. 아들에 이어 아내까지 감기몸살을 앓고 있다. 아내는 귀가하자마자 침대로 직행 바로 누어 꼼짝을 못한다. 중간에 일어나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는 끙끙 앓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함께 누워 아픔을 나누려 했지만 나 혼자만으로 족하니 들어오지 말라 한다.

 

거실에 앉아 텔레비전 삼매경에 빠져 있는 나는 무엇인가. 아내가 끙끙 앓고 있는데 약을 사 먹으라는 말 밖에 달리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저녁을 해결하고 왔으니 천만다행이었다. 홀로 앉아 바보상자를 바라보는 재미도 한계가 있었다. 술이나 한잔할까, 안주를 찾아보니 귤이 몇 개 있을 뿐 육고기는 없었다.

 

매일 같이 마시는 담금술, 소주는 싫었다. 며칠 전 집들이한다고 부산을 떨고 있을 때 지방에서 올라온 셋째 처제가 들고 온 것이 생각났다. 맘스 오피스 선반 깊숙이 숨어 있었다. 개봉했다. 양주였다. 뚜껑을 열어 향기를 맡아 보았다. 쥑인다. 얼음을 넣은 컵에 갈색톤 액체를 부어 보았다. 얼음에 닿자마자 기포가 생기며 맹렬하게 상하 운동을 한다. 한 모금 마셔 보았다. 입에 착 감긴다. 약간 씁쓸함과 동시에 입안에 퍼지는 향기는 오장육부를 파르르 떨게 했다. 아내는 아파서 죽는다고 신음을 토해내고 있는데 즐거움을 독식해서야 되겠는가. 죄책감이 앞섰다. 한 잔으로 끝냈다.

 

늦은 시각 딸내미가 들어왔다. “엄마는?” 거실에 있어야 할 아내가 보이지 않으니 궁금했던 것이다. “설거지가 안 되고 그대로네” 아내가 아프니 누가 설거지를 했겠는가. 나 역시 저녁을 해결하고 들어온 관계로 몰랐던 것이다. “엄마가 감기 몰살로 죽을 지경이니, 네가 좀 하면 안 되겠니” 딸내미 역시 피고한 모양이다. 아침에 한다는 말을 던지고는 자기방으로 사라졌다.

 

소파에서 일어나 보니 세시가 좀 넘었다. 안방으로 향했다. 감기 바이러스를 잡으려면 전쟁터에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손가락 근육을 풀고 마디마디 윤활유를 발랐다. 밤새 앓고 있는 아내는 깊은 잠을 못 자고 있는 듯했다. “왜 들어왔어, 자기까지 걸리면 어쩌라고” 그러거나 말거나 아내의 어깨를 주물렀다. 잠시 후 끙끙 앓던 소리는 아이 시원해로 바뀌어 연발했다.

 

동창이 밝았는데 일어날 기색이 없는 아내는 하루종일 시체놀이를 할판이었다. 바이러스와 밤새 싸웠으니 기진맥진 무엇을 하고 싶겠는가. 아침을 먹어 야 했다. 싱크대 안에는 그릇들이 그대로 널브러져 있었다. 설거지를 먼저 해야 했다. 아내의 손을 덜어 주기 위해 세제를 풀어 여러 번 헹구는 작업을 반복했다. 그동안 설거지를 제대로 못한 다고 핀잔을 들어왔었다. 해장 겸 아침으로 라면을 택했다.

 

“무엇을 먹어야 하지 않나?” 아내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약을 먹는 것도 좋지만 일시적일 뿐, 고단백 음식을 먹어야 회복이 빠르다. 아이들은 해가 중천에 있어야 일어날 것이다. 사람이 네 명이나 있는데 집안이 너무 조용하다. 아내가 아프니 집안 분위기가 시베리아 벌판과 다름이 없었다. 온기를 불어 넣어야 했다. 오늘 저녁은 원기 회복에 최고인 ‘해신탕’으로 몸보신을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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