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돈이 그렇게 좋단말인가?
장독대가 얼어 터지게 생겼다. 며칠 전에는 미세먼지가 극성을 부리는 바람에 눈이 따갑고 코가 매웠다. 창문도 열리지 않는다. 유리창에 달라붙은 수증기가 레일 아래로 흘러 얼어붙은 것이다. 공조기를 가동하지 않고서는 신선한 공기를 받아들일 수 없다. 추워 얼고, 미세먼지로 굳게 닫힌 창문, 이래저래 전기 소비량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사회생활하면서 틈틈이 모아 두었던 비상금을 대출금 갚는데 내놓았다. 아내는 무척이나 고마워하면서도 빼돌린 돈이란 생각이 드는지 출처를 꼬치꼬치 따지기 시작했다. 예상은 했지만 그 정도가 너무나 지나치다. "바닥을 탈탈 털어 다 내놓진 않았을 것"이라며 얼마가 더 있는지 집요하게 따진다.
이상타. 내가 피땀 흘려 번 돈인데 왜 아내의 간섭을 받아야 한단 말인가. 자기가 벌어 저축하고 일부 가용에 쓰면 그만 아닌가. 몽땅 아내에게 바쳐야 하는 법이라도 있단 말인가. 소싯적에는 아버지가 모든 것을 관리했다. 엄마는 광에 있는 곡식을 관리하는 것에 불과했다. 장을 보기 위해선 곡식을 내다 팔아 생필품을 사곤 했다. 이것 역시 반드시 아버지의 허락이 있어야만 가능했다.
산업화가 되면서 월급쟁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호미 자루, 삽자루 버리고 도시로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그 틈바구니에 끼어 상경한 이후로 노란 봉투에서부터 계좌 입금에 이르기까지 몽땅 아내의 호주머니로 들어갔다. 왜 그렇게 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다들 그렇게 한다고 해서 고스란히 바쳤던 것이다. 멍청한 짓이었다.
일 년에 한 번은 결산은 해야 하지 않는가. 도대체 우리 집 자산이 얼마인지도 모른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가계부도 없다. 사실 물어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손에 쥐여준 돈이 얼마 안 되니 말이다. 차츰 아이들도 커가고 돈 쓸 일이 많아졌다. 적은 돈이지만 알뜰살뜰 잘 꾸려가는 것이 기특하여 물어보지 않았던 것이다.
언젠가 은퇴가 얼마 남지 않은 선배와 술 한 잔 나눈 적이 있었다. 술좌석의 주제는 으레, 재테크가 으뜸이다. 비상금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선배의 말에 의하면 "처음엔 다 갖다 바쳤지만 지금은 생활비 일부만 내놓는다"고 한다. "아이들도 다 컸고 해서 아내에게 몽땅 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남자가 돈 없으면 시체, 용돈 타서 쓰는 것 자체가 비굴하다"며,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딴 주머니 한두 개 정도는 챙기라"고 열변을 토했다.
선배의 말씀을 반면교사로 삼아 실천한 덕에 좀 모이게 되었다. 집을 장만하는 데는 뭉칫돈이 필요하다. 그것을 모으기 위해 골몰하는 아내의 모습이 안스러워 비상금을 내놓고 말았던 것이었다. 실수였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캄캄하다. 이제 돈 벌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털털거리는 자동차도 바꿔야 하고 여행도 다녀야 하는데, 거지 같은 인생 항로가 되지 않을까 두려움이 앞선다.
웬일로 새벽에 눈을 뜬 아내는 다리를 주무르기 시작한다. 날씨가 추워 운동이란 것은 숨쉬기 운동이 전부다. 겨우내 뭉친 근육이 돌덩이가 되었다. 종아리를 쓸어내리면서 발가락 관절꺾기까지 지극정성이다. 아내의 극진한 서비스를 받고 보니 여간 고마운 것이 아니다. 나근나근 노근 노근 시원함이 느껴올 무렵, 코맹맹이 소리로 소곤댄다. “자기야! 연말 보너스 두둑이 받지 않았어? 그 많은 돈 다 어디다 쓰려고 그래. 나 조금만 주라. 으잉?”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것을 새삼 느끼는 아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