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절 상여금을 몽땅 달라는 아내 설이 코앞에 다가왔다. 벌써부터 들떠 있는 아내는 시골에 가져갈 선물 보따리를 싸느라 여념이 없다. 더군다나 처가를 먼저 간다는 기쁨에 희희낙락 즐거움을 드러내고 있다. 가고 오는 길 좀 힘들어도 고향에 간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이 넘친다는 아내는 돈을 밝혀서 그렇지 심성 고운 여자다. 어제는 차 키를 달라면서 주차 위치를 물어보았다. 자그마한 손수레를 장만했다면서 미리 차에 실어 놓는다는 것이다. 장모가 끌고 다닐 손수레가 튼실하다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사실 시골에도 손수레가 있다. 하지만 녹슬고 낡아 볼품이 없다. 시장이나 밭에 나갈 때 끌고 다니기에는 왠지 촌스럽기까지 했다. 현찰로 주는 것도 좋지만 필요한 물건을 장만해주면 사용할 때마다 생각할 것이다. 효과 만점이다. 아들이 원하는 대학은 아니지만 합격의 기쁨을 누렸다. 재수하는 동안 시골에 가지 않았다. 이번 설에는 따라나선다고 한다. 어른들에게 인사도 하고 조상님께 감사의 절을 올린다고 하니 대견스럽지 않을 수 없다. 아들을 대동하고 고향에 나서는 발걸음, 무척이나 가볍지 않을까. 단지 취업 준비에 여념이 없는 딸네미가 집에 머문다는 것이 못내 아쉽다. 직장인들은 명절 보너스를 받는 것이 여간 즐거운 것이 아니다. 많지는 않지만 명절을 보내는데 요긴하게 쓰인다. 아내는 이 돈을 갈취하기 위하여 공격을 멈추지 않는다. 보너스 금액을 알 턱이 없는 아내는 집요하게 달려든다. 술이 거하게 취했을 때 슬그머니 물어보기도 하고 가끔은 월급명세서를 보자고도 한다. 한 이불 덮고 산지 20년이 넘은 지금은 훤히 들여다보고 있다. “당신 말이야! 이번 설에 써야 할 돈이 많거든. 보너스 받은 것 다 토해내야 해” 며칠 전부터 신신 당부했다. “이미 입금된 것으로 아는데 왜 일언반구도 없나요. 조금이라도 빼 돌리기라도 하면 큰 코 달칠 줄 알라”면서 협박을 했다. 내가 번 돈인데 왜 아내에게 몽땅 바친단 말인가. 절대 그럴 순 없다. 여러 말하기 싫어 알았다고 응답했지만 마음만은 편치 않다. 아내가 살림을 도맡아 하지만 내 돈까지 몰수할 순 없는 것이다. 젊었을 때는 몰라도 이제 오십 중반을 달리고 있는데 품위 유지를 위해 써야 할 돈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금까지 길거리 패선을 즐겨 입었다. 아이들 학비에다가 융자금 갚으랴 해서 여유가 손톱만큼도 없었다. 외식 역시 삼겹살이면 족했다. 누군들 2플러스 꽃등심을 먹고 싶지 않겠는가. 난 삼겹살이 가장 맛있다고 아이들에게 주지하다시피 했다. 미안하다. 우리 고유의 설 명절, 생각만 해도 진절머리가 난다는 대한민국 며느리들, 벌써부터 머리가 지근거린다며 푸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어제 마트에 들렀다가 들은 이야기다. 명절이 다가오면 살 것 많고, 쓸 돈은 적고, 가야 할 길은 멀고 남자나 여자나 힘들긴 매한가지다. 주머니 가볍다고 짜증내지 말자. 즐거운 마음을 가득 퍼주고 나면 귀성길이 더 없이 기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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