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얘기

배려

말까시 2015. 12. 17. 10:46

 

◇ 고객서비스가 빵점인 버스기사

아침공기가 무척이나 차다. 이제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될 란가 보다. 두툼한 솜바지를 입고 털이 수북한 외투를 걸친 처자들이 잔뜩 웅크린 채 입김을 내뿜고 있다. 잎을 다 버린 가로수는 찬바람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묵묵히 서있다. 날마다 빗질을 해도 굴러다니는 낙엽은 줄지 않는다. 거센 바람이 불어 떨어지고 치워지기를 반복하다보면 낙엽은 사라지고 없을 것이다. 간만에 추은 날, 하늘은 맑고 푸르다.

조조할인 버스를 타기 위해 서둘렀다. 전신샤워를 생략하고 머리를 감는 것으로 세안을 마쳤다. 밥솥을 열어보니 있어야 할 밥이 없었다. 주섬주섬 옷을 걸치고 집을 나섰다. 먼동이 트려면 아직 멀었다. 세상은 온통 먹물을 칠한 것처럼 까맣다. 가로등 불빛이 닿는 곳에는 희미하게나 윤곽이 보인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해보니 몇몇 사람들이 옷깃을 여미고 기다림을 이겨내고 있었다.

전광판이 있어 마냥 기다리는 지루함은 없어졌다. 새벽이라 그런지 배차 간격이 길었다. 운이 좋은 날은 바로 타는 경우도 있지만 최소 5,6분은 기다려야 한다.

차안은 손님이 많지가 않다. 거의 앉아 가는 확률이 높다. 승객들은 나이 드신 노년층이 많았다. 새벽 같이 일을 나가는 사람들의 옷매무새는 단정치 못하다. 삶이 팍팍하여 가꿀 엄두를 못내는 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만사가 귀찮은 듯 의자에 앉자마자 잠을 청한다.

두어 정거장을 지났을까. 한 할머니가 올라오고 있었다. 옷을 너무 많이 껴입어서 그런지 움직임이 둔했다. 계산대에 지갑을 댔지만 결제가 되지 않았다. 할머니는 당황한 나머지 문지르기 까지 했다. 다행이 뒤에 손님이 없어서 망정이지 여러 사람에게 민폐를 끼칠 번했다.

할머니는 표시창에 카드를 문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버스기사가 한마디 한다. “할머니 내려서 대주세요.” 인식을 못한 것인지 계속하여 상단 표시창에 뎄다가 떼기를 반복했다. “살짝 내려서 대세요” 버스기사 언성이 높아졌다. “내려서 대라니깐요” 버럭 화를 내는 버스기사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다. “아이참 내려서 대라고” 그때서야 인식을 한 할머니는 살짝 내려줌으로써 성공했다.

여러 사람 앞에서 창피를 당한 할머니는 몸 둘 바를 모르는 듯 어색해 했다. 더군다나 버스기사에게 핀잔을 들었으니 기분이 몹시 상한 것 같았다. 좋은 말로 안내를 해주었으면 저렇게 화가 나지 않았을 텐데, 고객서비스정신이 엉망인 버스기사가 못내 아쉽다. 젊은 사람 같았으면 싸움이 일어날 뻔도 하나, 죄인이 된 것처럼 아무 말도 못하고 뒷좌석에 앉아 있는 할머니는 창밖을 바라보며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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