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까시의 추억

쩔쩔 끓는 아랫목

말까시 2015. 1. 21. 15:06

 


◇ 쩔쩔 끓는 아랫목 

 

대한이 지났다. 요 며칠 한낮 기온이 영상을 오르내리고 있다. 맹위를 떨치던 추위가 누그러든 것 같다. 가장 춥다는 대한이 지났으니 봄이 오는 길만 남았다. 엊그제 내렸던 눈도 사르르 녹아 없어졌다. 응달진 그늘에 듬성듬성 있을 뿐이다. 돌아 댕기는 개들도 활기차 보인다. 길고양이들도 무리를 지어 먹이 사냥에 나섰다. 틈틈이 사랑싸움을 하는 것인지 울고 붓는 소리가 요란하다.  

 

추위가 누그러졌다 해도 난방을 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다. 아궁이에 불을 지펴 구들장을 뜨겁게 달구어야 한다. 밖에서 놀다 들어와 얼었던 몸을 녹일 수 있는 곳은 아랫목뿐이다. 항상 이불이 깔려 있어 따스함을 보존하고 있는 아랫목은 난로와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불속으로 손을 밀어 넣는 순간 손끝에 느껴지는 온기는 전신을 타고 흘러 데워준다. 한참을 그렇게 머물러 있다 보면 스르르 잠이 온다. 잠깐 동안이라도 꿀맛이다.  

 

해가 넘어가 저녁때가 되었지만 아버지가 귀가 하지 않고 있다. 마냥 기다릴 순 없다. 저녁식사를 끝마친 엄마는 밥공기를 아랫목에 묻어 놓는다. 보온밥통 역할을 한 아랫목은 한동안 밥이 식는 것을 방지한다. 느지막이 돌아오신 아버지는 온기가 그대로 보존된 쌀밥을 맛있게 먹었다. 저녁을 배불리 먹었지만 돌아서면 배고픈 시절 먹다 남은 밥이라도 있으면 김치쪼가리를 얹어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웠다. 

 

청국장을 만들기 위해선 콩을 삶아 항아리에 넣고 이불을 폭 싸서 아랫목에 밀어 놓는다. 이삼일 띄우면 맛있는 청국장이 만들어진다. 이 또한 아랫목의 온기가 만들어낸 오묘한 맛이다. 술을 만들기 위해서도 일정한 온도가 필요하다. 고두밥을 지어 누룩과 버무린 다음 항아리에 담아 물을 붓고 아랫목에서 일주일 정도 숙성시키면 그윽한 향이 배어 있는 술이 만들어진다.  

 

잘 익은 술에 대나무 틀을 박아 용수를 떠낸다. 한잔 들이키면 그 맛이 일품이고 취함은 오장육부를 흔들어 놓는다. 최고급 술인 용수를 뜨고 나면 휘휘 저어 동동주를 만들었다. 밥알이 둥둥 떠 있는 동동주는 한 사발 마시면 속이 든든했다. 동동주를 뜨고 난 건더기를 물을 부어 걸러낸 것이 막걸리다. 알코올 도수가 많이 내려가 마시기에 편하다. 누구나 쉽게 마실 수 있는 농주란 바로 막걸리를 말하는 것이다.  

 

옛날에 갓 시집온 색시가 하루 종일 아랫목에 앉아 있다가 궁둥이를 데인경우도 있다. 무엇인가를 만들기 위해 아궁이에 불이 꺼질 일이 없는 잔치 날, 아랫목은 후끈 달아오른다. 장판이 새카맣게 타버리는 경우도 있다. 방석을 두세 개 깔고 있지 않으면 앉아 있기조차 힘들다. 홍당무가 된 새색시는 그날 하루 뜨거운 열기와의 싸움에 숨이 턱턱 막힌다. 뒷문을 열어 환기를 시켜 그나마 열기를 식혔다. 

 

보일러가 보급되면서 아랫목이 따로 없다. 배관을 타고 흐르는 물이 구석구석 열기를 전해주니 골고루 따스한 것이다. 쩔쩔 끓는 아랫목이 없어져 아쉽다. 시골사랑방에는 구들장이 그대로 살아 있다. 아궁이를 조금만 수리 하면 불을 땔 수가 있다. 따스한 아랫목에서 한숨 늘어지게 자고 나면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다. 기나긴 겨울 매서운 추위를 이겨내게 했던 고향 집 아랫목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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