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까시의 추억

봉기초

말까시 2015. 1. 8. 15:51

 


◇ 봉기초 

 

요즘 담배 값이 오르는 바람에 애연가들의 시름이 크다. 담배 값을 올려 금연을 유도하기 위한 정책이라고 하는데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두고 볼일이다. 담배를 끊기 위해서는 단단한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떤 계기가 있으면 쉽게 끊을 수 있지만 동기부여 없인 하늘에 별 따기보다 어렵다. 백해무익하다는 담배, 본인뿐만 아니라 타인의 건강을 위해서 이제 끊어야 하는 것은 숙명이다.  

 

나는 초등학교 때 논두렁에 있는 마른 쑥을 뜯어 뻐끔담배를 피워 본적이 있다. 잘 못하다가 목구멍으로 넘어간 연기는 기침을 하게하고 구역질이 나서 혼쭐이 난다. 장난삼아 피웠던 뻐금 담배가 골초가 되어 꽁초를 주우러 다닌 적도 있다. 어른 흉내를 내기 위해 너나나나 심지어 여자아이들도 피우기도 했다. 논두렁에서 불을 지르고 담배 피우며 놀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직도 담배를 끊지 못하고 있는 영진이란 친구가 있다. 그때 친구는 봉기초를 몰래 훔쳐와 신문지로 싸서 침을 발라 까치담배를 만들어 피웠다. 필터가 없어 엄청나게 독하다. 초등학교 때 배웠던 담배를 지금까지 피우고 있으니 속이 새카맣게 변해 있을지도 모르겠다. 마누라 없인 살 수 있어도 담배 없인 못산다는 친구는 집한 채를 살 수 있는 돈을 연기로 날려 보냈다고 한다.  

 

우리 동네 아이들은 누구나 한 번씩 봉기초를 피워 본적이 있다. 친구들의 권유와 호기심에 연기를 빨아 도넛을 만들어 날려 보내는 묘기를 부리기도 했다. 이웃에 있는 친구가 그것을 보고는 선생님한데 일러바친다고 협박하는 바람에 그놈의 입을 막기 위해 애를 먹은 적도 있었다. 동네 형에게 들키어 단채로 기압을 받고 훈계를 들어야 했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담배를 피다니 네 이놈들 오늘 나한테 죽었다.” 하면서 폭력을 행사하는데 죽는 줄 알았다.  

 

내가 본격적으로 담배를 피운 것은 고등학교 때다.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같이 놀 수 없다는 친구들의 경고에 어쩔 수 없이 피우게 된 것이다. 뻐금 담배는 인정할 수 없다고 하는 바람에 한모금빨아 깊이 삼키고는 바로 기절했다. 하늘이 노랗고 매스꺼워 도저히 서 있을 수가 없었다. 정신이 들 때까지 바닥에 누워 있어야 했다. 그렇게 해서 배운 담배는 하루에 한 갑을 피우는 골초가 되었다.  

 

1999년 말에 술과 담배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삼회에 걸쳐 방영한 적이 있다. 아스팔트처럼 새카맣게 변한 폐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아버지가 폐암으로 돌아가셨기 때문에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적절한 시기에 동기부여가 된 것이다. 굳은 각오로 줄이기 시작하여 삼 개월 후 완전히 끊을 수 있었다. 가래도 줄고 담배냄새가 나지 않아 불쾌감을 주지 않아 좋았다.  

 

담배를 끊은 지 15년이 지났지만 꿈속에서 담배를 피다가 벌떡 일어나 안도의 숨을 쉬곤 한다. 바람에 날아오는 담배연기가 코끝을 스치고 지나가도 싫지 않다. 구수한 향기가 피고 싶은 욕망을 부채질 한다. 그런 것을 보면 담배에 대한 미련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것 같다. 어떻게 이어온 금연인데 다시 필울 순 없는 것이다. “담배를 끊은 사람하고는 상종하지 말라”는 말도 있지만 굳건히 잘 참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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