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까시의 추억

칡이여 나에게 오라.

말까시 2014. 12. 11. 15:48

 

 

◇ 칡이여 나에게 오라 

 

산에는 낙엽이 지고 황량한 가지만이 바람에 떨고 있다. 칡넝쿨도 잎을 다 버리고 검게 변했다. 아무 곳이나 타고 올라가는 칡은 유해식물로서 산림자원을 좀 먹는 애물단지다. 전봇대를 지탱해주는 케이블을 타고 올라 정전을 일으키기도 한다. 키가 크지 않는 작은 나무에 칡넝쿨이 감싸 버리면 햇볕을 받지 못해 고사하고 만다. 이렇게 말썽을 부리는 칡이 소싯적 먹거리로 탈바꿈 되어 아이들의 사냥거리가 되었다.

 

산과 산의 계곡이 다 보일 정도로 낙엽이 떨어지고 나면 찬바람이 몹시 분다. 동면을 위해 뿌리에 많은 영양분을 저장한 칡은 아이들이 캐먹기 좋게 당도를 유지했다.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곡괭이를 들고 산으로 올라갔다. 나무를 타고 올라간 칡넝쿨을 발견하는 족족 캤다. 줄기가 굵은 칡은 뿌리도 굵어 그것을 캐는 데는 한나절 걸리는 것도 있었다. 여러 명이 파고 또 파서 키만 한 칡을 뽑아 올리면 만세를 부르기도 했다. 돌이 많은 곳은 작업하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평지보다 비탈진 곳은 캐기가 수월하다. 아이들은 어느 곳이 캐기 좋은 곳인가는 훤히 꿰뚫고 있다. 캐어진 칡은 똑 같이 나누었다.  

 

나누어진 칡은 옷에 닦아 찢어 먹었다. 씹으면 씹을수록 달달하고 씁쓸한 맛은 주전부리로 충분했다. 허기진 배가 불뚝 일어난다. 한참을 찢어 먹고 나면 입술이 갈색으로 변한다. 서로 보면서 웃고 웃으며 어깨에 메고 내려왔다.

 

물이 많이 나오는 칡을 찰 칡이라 한다. 잘라보면 속살도 많아 맛이 좋다. 즙을 내어 가만히 놓아두면 녹말이 가라 않는다. 이것을 메밀가루와 섞어 반죽하면 칡 냉면이 되는 것이다. 여름 한철 인기리에 팔리고 있는 칡 냉면은 쌉쌀하니 맛이 좋다. 신혼시절에 구의동 어느 골목에서 먹었던 냉면의 맛을 잊을 수가 없다.  

 

칡은 금방 먹지 않으면 산소와 접촉되어 갈색으로 변한다. 먹고 남은 칡은 얇게 썰어 말렸다. 차를 끓여먹기도 하고 술을 담았다. 수분이 많은 칡으로 술을 담으면 조총처럼 진해 술맛이 덜하다. 바싹 말린 것으로 담아야 술이 맑으면서 달달한 맛이 한층 더해진다. 안주가 없어도 인상을 찌푸리는 일이 없다. 30도짜리로 담은 칡 술은 비싼 양주와 견주어 색깔이나 향에 있어서 손색이 없다.

 

연초가 되면 시골친구들과 칡을 캐러 간다. 장비가 좋아 아무리 깊숙이 박힌 것도 뽑아낸다. 소싯적처럼 똑 같이 나누어 썰어 말려놓는다. 한번 캐온 칡으로 일 년을 먹는 샘이다. 담금 주는 일주일만 되어도 갈색으로 변해 그 향이 너무 좋다. 식사 때마다 반주로 즐긴다. 특히, 잠이 오지 않을 때 칡 술 한 잔은 수면제로도 한몫을 한다. 여름에는 얼음을 띄어 마시면 시원함이 가미되어 술맛을 좋게 한다. 나만의 즐거움이다.

 

금년도 얼마 남자 않았다. 새해가 밝아 오면 상경한 친구들을 소집하여 칡을 캐러 갈 것이다. 일 년 먹을 양식을 구하러 떠나는 것이다. 금년수확도 괜찮아야 할 것인데 장소를 물색하는 친구의 노력 여하에 따라 수확량은 확연히 달라진다. 칡이여 나에게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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