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캐
찬바람이 불면서 눈이 오고 엄동설한이 지속된다. 두툼한 솜바지를 입지 않고서는 겨울을 날수가 없다. 속옷 역시 두툼한 내의로 무장해야 한다. 보온이 잘된 옷의 솔기 깊은 곳에 이들이 진을 치고 있다. 움직임이 덜한 야음을 틈타 밖으로 나와 활동하기 시작한다. 벼룩과 빈대 역시 포유류에 기생하여 피를 빨아 먹고사는 나쁜 곤충이다. 찬바람이 몹시 부는 겨울저녁만 되면 이와의 전쟁을 치러야 했다.
솔기에 이들이 가득하면 가려워 잠을 잘 수가 없다. 가려운 곳을 긁다보면 피가 나서 곪아 터질 수도 있다. 이를 박멸해야 한다. 내의를 반쯤 내리고 솔기 속에 깊이 박혀 있는 이를 손톱으로 짓눌러 죽여 없앴다. 피를 잔뜩 빨아 먹은 이들은 손톱으로 누를 때마다 따악 소리가 났다. 한참을 잡다 보면 손톱 밑이 벌겋게 변한다. 옷가지 역시 재봉 선을 따라 빨갛게 물들어 갔다.
너무나 깊숙이 박힌 이와 아주 작은이는 잘 보이지 않는다. 현미경을 들이댈 수도 없다. 엄마는 내의를 벗기고 나서 재봉 선을 따라 화로 가까이에 대면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뜨거운 열기에 견디지 못하고 나온 것이다. 밖으로 나온 이를 툴툴 털어 화로 불에 떨어뜨린다. 이들은 따닥 소리를 내며 잿더미로 변했다. 머리카락 타는 냄새가 진동을 했다.
칼바람이 매섭게 부는 겨울에 목욕하는 것은 엄두를 낼 수가 없다. 시골에는 목욕탕도 없다. 따뜻한 바람이 밀려오는 봄이 와야 목욕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고양이 세수로 대신하고 머리는 기름범벅이 되어도 감지 않았다. 우물가에서 물을 길어와 가마솥에 데워도 세수를 하고나면 동이 나고 만다. 이렇게 위생개념이 제로였던 시절 머릿속에는 서캐가 하얗게 깔려 있었다. 서캐가 부하하여 머릿속을 기어 다니는 것이 눈에 보이기도 했다.
머릿니를 잡기에는 참빗이 요긴하게 쓰였다. 가늘고 촘촘한 빗으로 빗어 내릴 때마다 하얗게 묻어 나오는 서캐는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을 돋게 한다. 이것 역시 화로에 털어 화형을 시켜버렸다. 참빗은 대나무로 만들었다. 엄마들이 기름을 바르고 머리를 곱게 빗어 내릴 때 쓰였던 참빗은 빗살을 물들여 곱게 했다. 이를 잡고 나면 반드시 참빗 사이에 끼여 있는 서캐찌꺼기를 제거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방치 했다가는 핏물과 이의 시체들이 엉겨 붙어 잘 떨어지지 않는다. 할머니나 엄마가 아는 날이면 혼쭐을 면하기 어렵다.
그렇게 사람의 피부에 달라붙어 기생하던 이들이 사라졌다. 살충제가 나온 이유이기도 하지만 이가 서식 할 수 있는 환경이 사라진 것이 주된 이유가 아닌가 싶다. 매일 같이 샤워하고 강한세제로 세탁을 하니 이들이 배겨날 수가 없는 것이다. 나일론 옷이 본격적으로 보급되자 가늘고 질긴 실에 발이 꼬여 오도 가도 못하여 죽음을 면치 못했다는 속설도 있다. 널뛰기를 잘하는 벼룩도 사라졌다. 낮에 숨어 있다가 밤만 되면 피부에 달라붙어 피를 빨아 먹던 빈대역시 곤충도감에서나 볼 수 있게 되었다.
위생수준 향상으로 사라진 줄 알았던 이들이 다시 창궐했다고 한다. 맞벌이로 챙겨주지 못한 아이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참으로 질긴 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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