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까시의 추억

고드름

말까시 2015. 1. 13. 15:54

 


◇ 고드름

 

추위가 맹위를 떨치더니만 주춤해졌다. 온기에 한방 맞은 것 같다. 그늘진 곳에 얼어붙었던 빙판이 사그라져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산과 산에 수북이 쌓였던 곳에 낙엽이 보이고 응달진 곳에 듬성듬성 눈덩이가 보인다. 폭포에는 물이 보이지 않고 빙벽만이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빙벽 안에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조금만 더 날씨가 풀리면 장대처럼 늘어졌던 고드름도 녹아 없어질 것이다.

 

초가지붕에 하얀 눈이 수북이 쌓였다. 이엉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눈 덮인 지붕은 둥글게 마을을 이어간다. 언덕위에서 보면 하얀 봉우리가 무수히 많아 장관을 이룬다. 아침 해가 뜨고 기온이 상승하면 눈이 녹아 물방울을 만든다. 땅바닥에는 흥건하여 질척해진다. 태양이 고도를 높이자 녹는 속도가 빨라진다. 갑자기 찬바람이 불어온다. 떨어지던 물방이 얼기 시작한다. 작은 것이 얼어 얼음이 되고 그 위에 또 다른 물방울이 달라붙어버리면 커다란 고드름이 만들어진다.

 

밤새 꽁꽁 얼어붙었던 고드름이 날이 새면서 녹기 시작하자 몸집은 줄어들고 끝은 뾰족해진다. 대나무 장대로 후려치면 우두두 떨어진다. 하나 들고 입에 물면 아이스크림을 먹는 기분이다. 달달한 맛은 나지 않지만 빨면 빨수록 시원해진다. 갈증이 날 때도 한몫을 한다. 배가 고플 때 고드름을 씹어 먹기도 했다. 속이 얼얼하다. 지나치게 많이 먹다보면 배탈이 나서 고생을 한다. 먹을 것이 귀했던 시절 고드름도 허기를 면하는데 일조를 했다.

 

새마을 사업이 한창일 무렵 지붕개량도 이어졌다. 초가는 매년 이엉을 얹어야 하는 불편을 초래한다. 게을러 이엉을 얹지 못하면 썩어 물이 새는 경우도 있다. 그러한 불편을 해소하고자 슬레이트를 얹었다. 불편은 해소 되었지만 단열이 안 되어 외풍이 매우 심했다. 천정에서 내려오는 냉기는 걸레를 얼게 하고 밤새 먹고자 떠다 놓은 물도 얼음으로 만들었다. 군불을 많이 때어도 새벽이 되면 추위에 떨어야 했다.  

 

슬레이트는 골이 파여져 있다. 비가 내려도 금방 내려간다. 눈이 쌓여도 미끄러져 내려오는 경우도 있었다. 슬레이트지붕이 만들어 버린 고드름은 크기가 대단하다. 초가지붕이 만든 고드름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굵고 커다란 고드름은 장대로 후려쳐도 잘 떨어지지 않는다. 지붕을 한 바퀴 돌면서 고드름을 따는 것도 보통 힘든 것이 아니다. 그대로 방치했다가는 마당이 질척해져 이동하는데 불편을 준다. 떨어지는 고드름에 맞아 다칠 수도 있다. 자라기가 무섭게 고드름을 따야 했다.

 

사각의 집들이 즐비한 도심에서는 고드름을 보기가 어렵다. 달동네나 가야 볼 수 있다. 산에 오르면 사철나무위에 쌓였던 눈이 녹으면서 만들어진 미니 고드름을 볼 수 있다. 나무기둥에도 흐르던 물이 옹이에 이르러 얼고 또 얼어 고드름을 만들기도 한다. 보는 것만으로도 옛 생각을 나게 한다. 고드름을 따서 빨아 먹고 던지며 놀았던 유년시절의 추억이 새록새록 살아나는 요즘 눈가에 미소 짓는 경우가 잦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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