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까시의 추억

발동기

말까시 2015. 1. 16. 15:20

 


◇ 발동기

 

<갈매동 모 식당앞에 전시된 발동기>

 

 

 

한겨울에 가랑비가 내리고 있다. 기온이 상승하면서 벌어지는 일이다. 눈이 와야 할 판에 비가 내리다니, 중앙고속도로에서는 43중 추돌사고가 일어났다고 한다. 바닥에 뿌려진 빗물이 살얼음을 만들어 일어난 사고로 밝혀졌다. 비가 내린다고 방심을 한 것이 아닌가 싶다. 주말이 다가오는 불타는 금요일, 가랑비가 내려서 그런지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소싯적 마을에서 가장 큰 건물은 정미소다. 정미소 안에는 집체만한 발동기가 자리를 잡고 있다. 기름 범벅이 된 발동기는 먼지가 달라붙어 검은색을 띠었다. 바퀴처럼 생긴 커다란 회전체 두 개가 양 옆에 달려 있다. 불규칙하게 회전하는 크랭크축을 부드럽게 유지하는 장치이다. 원심력을 이용한 것이다. 발동기 바로 아래는 작은 우물이 있다. 맑은 물은 냉각수로 이용되었다.  

 

시동을 걸기 위해서는 장정 두 명이 달려들어야 한다. 힘차게 돌려 원심력이 발생할 때 배기밸브를 차단하면 연료가 폭발하게 된다. 폭발력은 왕복운동을 회전운동으로 바꿔 동력을 얻게 된다. 배기 밸브를 열고 돌리다보면 “푸시 푸시 푸, 푸시 푸시 푸”소리를 반복한다. 시동이 걸리고 나면 “탕, 탕, 탕” 대포 소리가 난다. 배기통에서는 검은 연기가 솟구친다. 발동기 주변에는 땅이 흔들린다. 집체만한 회전체가 돌아가면서 엄청난 진동을 일으킨 것이다. 방아를 찧는 동안에는 온 동네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발동기에서 나온 동력은 피대를 이용해서 기계 곳곳에 전달했다. 쌀 방아도 찧고 고춧가루도 빻았다. 정미소 안에는 먼지가 가득하다. 방아를 찧기 위해서는 그 안에서 일을 해야 한다. 수건을 두르고 작업을 하다보면 먼지가 뽀얗게 앉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먼지란 놈은 콧속에도 눈썹에도 하얗게 앉아 있다. 시골의 삶이 힘들고 어려운 일이지만 하얀 쌀과 고춧가루를 보면서 뿌듯해 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곤 했다.  

 

고장이 나면 수리하기 어렵고 시동을 거는데도 힘이 드는 발동기는 전기 모터가 나오면서 생을 마감했다. 전기모터는 소음도 없고 크기도 작아 관리하기가 좋다. 시동을 걸 필요도 없이 스위치만 넣으면 저절로 돌아가는 것이 여간 신기한 것이 아니다. 전기모터에 밀린 발동기는 쇳덩어리로 변해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얼마동안 내동댕이쳐 있다가 고물장사가 실어갔다.  

 

일제 강점기에 세워져 오랫동안 우리의 먹을 것을 책임졌던 정미소도 소형 도정기가 나오면서 문을 닫아았다. 지금은 흔적조차 없이 사라지고 텃밭이 되었다. 그곳을 지날 때마다 커다란 정미소 건물을 상상해 보곤 한다. 기계를 만지며 열심히 방아를 찧던 분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미 돌아가시거나 꼬부랑 할머니가 다되었다. 정미소를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갑부로 여겼던 옛날의 영화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무쇠덩어리에서 나오는 무서운 힘으로 온 동네를 떠들썩하게 했던 발동기도 세월에 녹이 쓸어 옛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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