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썰매
가을걷이가 끝나고 세찬 바람이 불어와 논바닥이 얼면 썰매를 타고 놀았다. 썰매는 나뭇가지를 잘라다가 다듬어 지지대를 만들고 그 위에 송판을 덧대어 만들었다. 굵은 철사를 밑에 부착하여 얼음과의 마찰이 최소화되도록 했다. 부잣집 아이들은 칼날을 사다가 부착했다. 철사보다는 빠르게 달릴 수 있어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겨울 내내 얼음지치기는 해가는 줄 모르고 이어졌다.
썰매가 필요하다. 돈이 없다. 재료는 자연에서 얻을 수밖에 없다. 각목을 구하기 위하여 들로 나가 찾아보았지만 있을 리 없다. 산에 올라가 나무를 잘라다가 각목을 만들었다. 송판은 나무를 잘라 만들려고 해도 어린 아이들 손으로 만들 수 없다. 굵은 철사 역시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없다. 인삼밭에 가면 그늘을 만들기 위하여 총대와 총대를 연결하는 철사가 있다. 굵지는 않아도 썰매 밑에 덧대어 고정하면 임시방편으로 썰매를 만들 수 있다.
장날, “아버지! 썰매를 만들기 위해 칼날 좀 사다주십시오.” 간곡하게 부탁했지만 무시했다. 철사로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데 돈을 들여 칼날을 산다는 것은 낭비라 생각한 것 같다. 난 손재주가 있어 다른 아이들보다 썰매를 잘 만들었다. 굵은 철사를 두드리고 두드려 납작하게 만들었다. 둥근 철사를 덧대는 것보다 마찰력이 약해 잘 미끄러졌다. 그렇게 만들어진 썰매는 시합을 나가 일등을 하기도 했다.
썰매를 타기 위해서는 나무막대기가 필요하다. 치고 나가는 힘을 얻기 위해서는 막대기에 못을 박아 뾰족하게 갈아야 한다. 그라인더가 없기 때문에 시멘트 바닥에 갈고 또 갈아야하는 일을 수없이 반복해야 한다. 막대기 역시 무른 나무를 사용하면 못이 파고들어가 힘을 낼 수가 없다. 일자형 막대기로도 사용했지만 잡기 편하기 위하여 T자형으로 만들었다.
추위가 맹위를 떨치는 때는 얼음이 깨지지 않는다. 삼한사온이 잘 지켜지던 소싯적 논바닥 얼음은 따스한 햇볕이 내리쬐는 오후가 되면 가장자리 약한 부분이 쉽게 깨졌다. 썰매 타는 것에 정신을 팔고 달리다보면 풍덩 빠지는 경우가 있다. 신발은 말 할 것도 없이 양말까지 물에 적시고 만다. 젖은 상태로 집에 가면 엄마한테 혼난다. 말려야 했다.
논둑에는 잡초가 바싹 말라 불을 붙이면 활활 타오른다. 젖은 양말을 불에 쬐면 김이 모락모락 나면서 말랐다. 나일론 양말이라 자칫 잘못하다가는 구멍이 나기도 했다. 그날은 죽는 날이다. 돈이 귀한 시골에는 꿰매고 또 궤메어 신어야 했다. 불장난을 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바지에 구멍이 나는 경우도 있다. 밖에 나가 놀다 오면 늘 혼나는 것이 일상이었다.
방학이 되면 스케이트를 가지고 오는 도시 아이들이 있었다. 칼날을 반짝이며 무서운 속도로 달리는 스케이트는 썰매하고는 비교 할 수 없다. 어떻게 한번 타볼까 해도 발이 맞지도 않거니와 빌려주지도 않았다. 검은 가죽신에 칼날을 박은 스케이트는 시골아이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도시 아이들이 떠나고 나면 그렇게 허탈할 수가 없었다. 손수 만든 썰매를 타면서 그 아픈 가슴을 달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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