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까시의 추억

시집가는 날

말까시 2014. 11. 27. 15:37

 


◇ 시집가는 날 

 

예식장이 없을 때는 신부 집 마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마당에 멍석을 깔고 평풍을 치고 상을 차려 맞절을 하는 것으로 부부의 연을 맺게 되는 것이다. 결혼식이 있는 날 신부 집에서는 거하게 잔치를 벌인다. 신부는 다음날 시집으로 가서 하루 종일 고역을 치러야 한다. 화장실 가는 것도 쉽지 않아 졸졸 굶어 저녁이 되면 쓰러지기 직전까지 이른다. 시집가는 날은 애를 낳는 것처럼 고통이 수반되는 힘겨운 날이다. 

 

잔치가 벌어지기 하루 전, 돼지를 잡고 전을 붙인다. 동네 아낙들이 모여 솥뚜껑을 엎어 놓고 전을 붙여냈다. 고소함이 온 동네를 휘감아 버리면 아이들이 담 너머로 고개를 빼꼼내밀고 입맛을 다신다. 주인이 없는 틈을 타서 전을 들고 나온 엄마는 “집에 가서 누나하고 나누어 먹으라.” 하고 서둘러 자리로 돌아갔다. 아이들이 빼돌린 전을 새어보면 그것도 상당할 것이다. 의례히 있는 일이지만 대놓고 아이들에게 갖다 주기에는 미안한 감이 없지 않다.

 

자전거에 술통을 싫고 배달 온 아저씨가 커다란 항아리에 막걸리가 부어지고 돼지를 삶아 썰어 준비하면 잔치준비는 끝난다. 하루전날 일가친척들이 와서 밤늦게 까지 도와주고 큰방, 작은방, 사랑방에서 나뉘어 주무신다.

 

다음날 신랑은 신부 집에서 식을 올리고 그 동네 청년들에게 거꾸로 매달린 채 ‘신랑달기’ 의식이 거행된다. 발바닥이 뜨겁게 얻어맞고 나서야 신부 집에서의 행사가 끝난다.  

 

날이 새면 시집가는 날이다. 신부가 타고 온 택시는 오색 종이테이프가 드리워져 있다. 신부구경을 위해서 몰려나온 사람들로 마을 어귀는 북새통을 이룬다. 동네 아낙이 양쪽에서 팔짱을 끼고 신랑 집까지 모셔온다. 걸어오는 동안 길게 늘어선 사람들은 이러쿵저러쿵 한마디씩 했다. 고개 숙인 채 걷는 신부얼굴을 자세히 볼 수가 없다. 호기심이 발동한 아이들은 자세를 낮추고 조금이라도 더 보려고 쟁탈전이 벌어졌다.  

 

신부는 안방 아랫목에 모셔진다. 하루 종일 그 자리에서 미동도 없이 앉아 있어야 한다. 여간 고역이 아닐 수 없다. 중간에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쉬운 일이 아니다. 곱게 차려입고 화장실에 갈 수 있는 입장이 못 된다. 워낙 급하면 뒤뜰에 나가 아줌마들이 빙 둘러 가린 다음 실례를 했다. 새색시가 떠난 요강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아이들은 경사가 난 것처럼 깔깔거리며 쳐다보고 있었다. 신부는 부끄러워 고개를 숙인 채 안방으로 사라졌다.  

 

잔칫날에는 의례히 싸움이 벌어진다. 공자술이라고 마구 마시다 보면 취해서 시비가 붙기 마련이다. 천막을 받치고 있는 장대가 부러지고 천막이 주저앉아 생난리가 난다. 술에 취해 옷을 벗고 논바닥에 뒹굴며 천하를 얻은 것처럼 호령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떻게 알고 왔는지 거지들도 끊임없이 다녀간다. 아이들도 신났다. 주머니에 먹을 것을 잔뜩 넣고 나와 하루 종일 배불리 먹었다.

 

잔치가 파하는 저녁이 되면 장구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고 덩실덩실 춤을 추웠다. 자정이 될 무렵 신방이 꾸려진다. 이제 한숨을 돌리고 마음껏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신방에는 술상이 차려지고 신랑신부 둘만의 시간이 펼쳐진다. 날이 새면 일찍 일어나 본격적인 며느리로서의 소임을 다해야 한다. 걱정이 태산 같아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날이 샌다. 모든 것이 어색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아 좌불안석은 달포가 지나야 면할 수 있다. 여자에겐 시집가는 날이 좋기도 하겠지만 혹독한 시련의 첫걸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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