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까시의 추억

호박풀대

말까시 2014. 11. 25. 14:46

 


◇ 호박풀대

 

 

지난 주말 고향을 다녀오면서 임자 없는 호박이 눈에 띄었다. 아직도 줄기에 매달려 있는 호박은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나가 아니었다. 잎이 시들어 겉으로 드러난 호박들은 노랗게 익어 있었다. 저것들 몽땅 따다가 말리면 겨울 양식으로 요긴하게 쓰일 건데 참으로 아까웠다. 호박이 늙어 단단해지면 바로 해먹을 수 없다. 늙은 호박이 음식으로 탈바꿈 하려면 손이 많이 간다. 귀찮기도 하거니와 달달하고 맛있는 음식이 넘쳐는 바람에 외면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울타리에 매달려 있는 임자 없는 호박> 

 

 

호박은 담벼락 밑에 심었다. 구덩이를 파고 잘 삭은 똥물을 퍼다 부은 다음 흙을 덮고 나서 파종했다. 특별하게 가꾸지 않아도 잘 자란다. 노란 꽃이 피면 벌과 나비가 날아와 수정을 시킨다. 꽃이 시들어 지려고 하는 밑을 보면 애호박이 달려 있다. 애호박은 하루가 다르게 자란다. 주먹만 하게 자라면 따야 한다. 채 썰어 볶아 먹어도 되고 전을 붙이면 부드럽게 잘 넘어간다.

 

 

감자와 호박을 깎둑썰어 고추장에 버무려 물을 붓고 찌개를 끓여도 얼큰하니 맛이 좋았다. 미꾸라지를 잡아 추어탕을 끓일 때도 호박을 넣으면 비린 맛을 잡을 수가 있다. 비가 오고 나면 호박은 무섭게 자란다. 호박잎사이에 숨어 있는 것을 늦게 발견하기라도 하면 부드러운 맛이 덜하다. 바로 썰어 말리면 호박고지가 만들어진다. 필요할 때마다 물에 불려 탕을 끓인다든가 기름을 두르고 볶아 먹으면 애호박과는 또 다른 맛을 낸다.

 

 

엄마는 틈나는 데로 호박을 따서 말렸다. 창고지붕에는 채반이 여러 개 얹어 있었다. 끼니마다 호박을 따서 반찬을 만들어 먹어도 어김없이 호박이 매달려 있었다. 미처 발견하지 못한 호박은 늙어버린다. 노랗게 익은 것은 반찬으로 만들어 먹을 수가 없다. 호박을 갈라 씨를 발라내고 두껍게 썰어 짚으로 엮어 처마에 매달았다. 겨우내 찬바람을 받으며 말라버린 호박은 시루떡을 만들 때 넣으면 달달한 호박떡이 탄생하게 된다.

 

 

 

<아내가 외면한 늙은 호박> 

 

 

늙은 호박의 변신은 여기가 끝이 아니다. 배고픈 시절 삼시세끼 쌀밥을 먹을 수가 없다. 일을 하지 않는 농한기에는 고구마를 삶아 한 끼로 대용했다. 늘 먹는 고구마가 질릴 때 늙은 호박을 잘라서 솥에 넣고 삶다 보면 흐물흐물 해진다. 쌀가루를 조금 넣고 계속하여 저어주면 호박죽이 만들어진다. 바로 이것을 ‘호박풀대’라 했다. 가난의 상징 ‘호박풀대’는 천한 음식이라 해서 부잣집아이들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대형마트나 음식코너에는 호박죽을 파는 곳이 있다. 가격도 저렴하여 간식으로 먹어도 좋다. 소화가 안 될 때 죽을 먹곤 하는데, 호박죽이 제격이다. 출산 후 붓기를 빼는데 탁월하다고 해서 산모들이 즐겨먹기도 했다. 울릉도에서는 호박으로 엿을 만들어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호박의 종류도 많아 다양하게 이용되고 있다. 호박 역시 건강식이라 하여 전통음식점에 가보면 메뉴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찬바람이 매섭게 부는 엄동설한에도 엄마가 끓여준 ‘호박풀대’ 한 그릇이면 추위는 금방 달아났다. 이제 엄마가 끓여주는 ‘호박풀대’를 맛볼 수가 없다. 손이 많이 가는 일이라 만들기도 어렵거니와 힘에 부쳐 엄두가 나지 않는다. 추억의 음식으로 뇌리에 깊숙이 박힌 ‘호박풀대’, 은퇴 후 귀농하는 순간 손수 재배하여 만들어 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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