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까시의 추억

딸기 서리

말까시 2015. 5. 27. 14:29

 

◇ 딸기 서리

주말에 시골 다녀왔다. 연녹색이 덮고 있는 고향의 들녘에는 사람과 기계가 부단히 움직였다. 덩치 큰 트랙터가 논바닥을 갈아엎고 경운기는 밭을 일구었다. 감자 꽃이 피었고 씨 고구마 넝쿨이 영역을 넓혀 무성했다. 집안에 들어서자 딸기가 빨갛게 익어 있었다. 탐스럽게 익은 딸기는 따먹을 사람이 없어 짓무른 것도 눈에 띄었다. 하나 따 먹어 보니 무척이나 달았다. 노지 딸기를 보니 아득히 먼 옛날에 딸기 서리하다 잡혀 혼쭐난 기억이 되살아난다.  

<뜨럭 밑에 자란 딸기>

그때가 초등학교 4학년 이맘때인 것 같다. 동네 아는 형이 딸기 서리를 하자며 아이들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며칠 전에도 다녀왔다면서 밭 딸기가 탐스럽게 익어 배불리 먹을 수가 있다고 했다. 시골에서 딸기를 먹기 위해선 산과 들로 헤매고 다녀야 조금 얻어먹을 수가 있다. 밭 딸기처럼 큰 것이 아니라 배불리 먹기에는 역부족이다. 몇몇 친구들과 의기투합 선배를 따라나서기로 했다.

뒷동산이 아니었다. 산을 넘고 능선 따라가다 보니 동네는 점점 멀어졌다. 겁이 덜컥 낫다. 다시 돌아갈 수는 없는 일, 선배를 따라 무작정 걸었다. 몹시 배가 고팠다. 주변을 살펴보아도 산딸기는 아직 열매를 맺지 못했다. 무엇하나 먹을 것이 없었다. 뱀이 나와 발목이라도 물면 큰일이다. 한 손에 막대기를 들고 조심조심 수풀을 헤치고 나아갔다. 빼곡했던 소나무가 사라지고 탁 트인 하늘이 보였다. 그 아래 딸기밭이 펼쳐져 있었다.

그렇게 크지 않은 딸기밭이었다. 탐스러운 딸기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이런 깊은 산속에 웬 딸기 밭이란 말인가. 우린 탄성을 자아내지 않을 수 없었다. 딸기밭을 헤집어 보니 열매가 엄청나게 컸다. 양손으로 딸기를 움켜쥐고 입으로 마구 밀어 넣었다. 우린 배불리 먹고 주머니에 가득 담았다.

딸기 따느라 정신이 없을 무렵 어디선가 나타난 주인이 선배를 낚아챘다. 나와 친구는 줄행랑을 쳤다. 하지만 멀리 갈 수가 없었다. 선배가 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소나무 뒤에 숨어 동태를 살폈다. 빨리 오라고 선배는 소리를 질러댔다. 우린 무서웠다. 선배의 보복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주인은 계속하여 협박했다. 학교에 연락하여 퇴학시킨다는 말에 발길을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친구와 나는 주인 앞에 무릎을 꿇고 빌었다. 이놈들이 봉지를 들고 온 것을 보니 서리가 아니라 내다 팔 작정이었다며 겁박을 했다. 그동안 없어진 딸기를 다 변상해야 하며 학교에 연락하여 벌을 받도록 조치하겠다며 손을 움켜잡았다. 큰일이다. 아버지가 알면 초주검이다.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지만 용서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런 젠장, 잠시 방심한 틈을 타서 선배는 도망치고 말았다. 순간 우리 손목은 주인의 손에 잡혀 옴짝달싹을 못하고 말았다. 비겁했다. 나와 친구는 주인의 손에 이끌리어 선배의 집으로 갔다. 선배는 없었다. 선배 아버지만이 방안에 누워 있다가 우릴 보고 깜짝 놀라며 무슨 일이냐고 했다. 선배 아버지는 병환 중이라 몰골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주인에게 자초지종을 듣고 난 후 우린 꾸지람을 들어야 했다. 다행히 친구와 우리집은 방문을 하지 않았다. 훼손된 딸기에 대하여 변상 요구도 하지 않았다. 학교에도 알리지 않겠다고 하면서 다시는 못된 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고는 떠났다. 천만다행이었다. 그 이후 딸기만 보면 아픈 추억이 되살아나 쓴웃음을 짓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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