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까시의 추억

비와 모내기

말까시 2016. 5. 24. 10:13


◇ 비가내리면 눈코뜰새 없이 바빴던 그시절이 그립습니다.  

언제부턴가 비가 내리고 천둥이 치면 기분이 좋아진다. 왜일까. 도시에 비가 내리면 온도가 내려가 시원하고 미세먼지가 사라져 공기가 상쾌하다. 닫힌 창문을 활짝 열고 심호흡을 하면 답답한 마음이 뻥 뚫린다. 차량이 달리는 소리 또한 나쁘지 않다. 출퇴근 시 불편함은 있지만 대지를 적시고 녹색물결이 선명하며 빗방울소리는 정겹기까지 하다.

들판에 모내기가 한창이다. 모내기를 위해선 물이 필요하다. 하늘만 바라보고 살던 소싯적에 가뭄이 들면 여간 고역이 아니다. 물을 끌어올 곳이 없으니 말이다. 물이 날 때까지 도랑을 파고 둠벙을 만들었다. 물지게를 만들어 물을 퍼 날라야 했다. 바싹 타들어가는 논바닥에 물을 부어보지만 금방 증발되고 만다. 하다하다 지치면 하늘을 원망하며 기우제를 지냈다.

세월이 흘러 전기가 들어오고 모터펌프가 보급되면서 논에도 관정을 뚫어 지하수를 퍼 올렸다. 비가 오지 않아도 모내기를 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경운기가 보급되기 전에는 소를 이용하여 갈고 써레질을 해야 모를 심을 수 있었다. 모내기 역시 일일이 허리 굽혀 심어야 한다. 한 줄을 심고 나면 허리를 펴고 한숨을 쉬어야 했다. 너무나 힘든 일이기에 새참과 막걸리를 마셔야 했다.

구불구불한 논두렁이 사라졌다. 농지정리가 시작된 것이다. 논마다 있었던 둠벙도 사라졌다. 바둑판처럼 반듯한 논에 물이 들어가면 트랙터가 들어가 갈아엎고 로터리를 쳤다. 온 동네 사람들이 달려들어 모내기를 해도 보름정도는 중노동을 해야 마칠 수 있었지만 기계화된 지금은 하루면 해치우고도 남는다.

모가 자라는 동안 논에는 우렁이를 비롯하여 물방개 미꾸라지도 자랐다. 메뚜기도 많았다. 논두렁을 다니며 보이는 우렁이와 물방개를 잡아 된장 풀고 끓여 먹던 생각이 난다. 문명의 이기가 살아 움직이는 것들을 모조리 앗아 갔다. 농약을 말하는 것이다. 병충해를 방제한다는 이유로 마구 뿌려진 농약은 벼말고는 아무것도 살수 없는 공간이 되고 말았다. 제초제는 생명체에 치명적이다. 그렇게 많던 미꾸라지도 자취를 감추었다.

유기농이 각광을 받고 있다. 농약을 치지 않는 유기농은 그만큼 소출이 적다. 잡초를 제거하기 위해 오리를 방류하기도 한다. 우렁이 농법도 있다. 하지만 도열병이라든가 잎마름병, 이화명충은 약을 치지 않고는 방제할 수 없다. 발 빠른 농약제조업체는 친환경농약을 개발하여 상품화 했다. 병원균을 죽이는 농약은 아무리 친환경으로 제조 했다 하나 인체에 무해할 수는 없는 것이다.

농약을 치지 않고 화학비료 없이 오직 퇴비로만 농사를 지었던 옛날이 그립다. 키가 크고 소출이 적다는 이유로 통일벼에 밀려 사라진 일반 벼는 밥맛이 무척 좋았다. 기름이 잘잘 흐르고 윤기 나는 쌀밥은 귀한 존재였다. 할아버지 빼고는 보리가 절반인 혼식을 먹어야 했다. 고봉으로 담은 밥한 공기 뚝딱 해치우면 배가 두둑했다. 단백질 공급원이 없었던 그 옛날 쌀밥은 우리의 주식이며 노동력을 제공하는 원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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