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얘기

건강검진

말까시 2014. 12. 15. 14:53

 


◇ 건강검진

 

국민건강보험법에 의하여 사무직은 2년에 한번 그렇지 않은 자는 1년에 한번 건강검진을 받아야 한다. 이를 이행하지 않을 시는 산업안전보건법에 의하여 과태료 처분을 받아야 한다. 선택적으로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법률에 의한 강제사항이다. 미루고 미루다 보니 연말에 와서 건강검진을 받게 되었다. 내 의지와는 관계없이 하루를 버리고 금식까지 해가며 받아야 하는 건강검진이 얼마나 건강에 도움이 될지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건강 검진을 받기 위해서는 전날 열시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하게 한다. 자다가 목이 말라도 물을 먹으면 안 된다. 완전히 속을 비워 공복인 상태로 병원을 향하는 사람들의 심정은 어떠할까. 아침밥을 거르고 찬바람이 몹시 부는 날 병원으로 가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결과는 늘 고혈압에 고지혈, 감마지티피가 기준치를 벗어났었다. 금년 검진 결과 역시 다르지 않으리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사실 체질을 개선하여 목표로 하는 체중에 이를 때 건강검진을 받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각종 모임에서 마셔대는 술은 내가 원하는 반대방향의 결과를 안겨주었다. 바쁜 연말보다 가을에 받는 것이 무엇보다도 수월하게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잔 술에 무너지곤 했다. 이제 더 이상 미루다 보면 해를 넘길 것 같아 지난주에 기본검진만을 받았다. 결과는 한 달 후에 통지 한다고 한다.

 

이른 시간임에도 병원대기실에는 검진을 받고자 하는 손님들로 가득했다. 무표정한 얼굴들은 무엇인가 근심에 가득한 듯 잔뜩 찌푸려 있었다. 묵묵히 앉아 기다리는 사람들은 앞을 주시하며 호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젊은 분들은 스마트폰을 주물럭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나이 드신 분들은 심각하다 못해 중병에 걸린 사람처럼 핏기가 없었다. 이름을 부를 때마다 한명씩 빠져 나가는 빈자리에 새로운 사람들이 차지했다.

 

30여분이 지날 무렵 나를 부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소변을 받아 오는 것으로 검진은 시작되었다. 키와 몸무게를 재고 시력검사와 혈압을 측정하는 것으로 검진은 이어졌다. 헤드폰을 뒤집어쓰고 청력검사도 했다. 언제나 기준을 초과하는 혈압은 나를 긴장하게 했다. 그 옆방으로 안내 되어 채혈을 하고 나니 현기증이 나는 듯 어지러웠다. 내과를 들러 간단한 물음에 답했고 X-Ray촬영실에 들어가려니 찜찜했다. 방사능이 미약하다고는 하나 좋을 리가 없다.

 

마지막으로 치과에 들렸다. 중년의 여의사였다. 의자에 앉아 뒤로 누운 채 입안을 벌려 샅샅이 살폈다. 어금니에 약간의 마모가 있지만 대체로 양호하다 했다. 나이가 들을수록 이가 약해질 수 있으니 딱딱한 것을 조심하라 했다. 덧붙여서 멀쩡했던 이라도 어느 한순간에 치주질환이 발생할 수 있으니 주기적으로 진단을 받으라는 말을 끝으로 건강검진은 끝났다.

 

병원을 나서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마지못해 한 검진이지만 해를 넘기지 않고 받았다는 안도감에 기분이 좋았다. 결과는 궁금하지 않다. 매번 대동소이한 결과는 나를 식상하게 했다. 건강검진을 받아 무엇을 발견하기 보다는 건강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하는 것이 주목적이 아닌가 싶다. 나이가 나이인 만큼 종합검진을 받아보라고 권고하는 아내는 일반검지만으로 끝내는 나를 못마땅하게 여긴다. 아무 이상이 없는 데 비싼 돈 주고 생고생을 하느냐고 반문하지만 왠지 불안한 마음을 감출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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