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얘기

늴리리 기와집에 얽히 이야기

말까시 2014. 11. 24. 15:37

 


◇ 늴리리 기와집에 얽힌 이야기.

 

 

고향의 정취는 정겹고 아늑하다. 쥐 죽은 듯이 조용한 고샅은 개미새끼 한 마리 보이 않는다. 적막한 골목을 누비는 것은 길고양이뿐이다. 산골에도 먹을 것이 풍부한지 보이는 고양이 족족 살이 올라 있었다. 주인 없는 감나무에는 홍시가 그대로 말라 아깝기 그지없었다. 너무 높이 달려 있어 딸 수가 없었나 보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들은 허물어져 흉물로 변했다. 마당에는 잡초와 우거진 나무들이 점령하여 비집고 들어갈 틈도 없다. 고요함이 휘감아 도는 골목에는 유년시절 그 모습 그대로 거기에 있었다.

 

 

 

<홍시가 주렁주렁 매달린 임자 없는 감나무>

 

 

 

소싯적 부잣집들은 늴리리 기와집에서 살았다. 안방과 윗방 사랑방이 있는 일자형 한옥으로 누구나 살고 싶은 집이다. 나무로 뼈대를 만들고 벽은 흙을 발라 공간을 메웠다. 바닥은 구들을 만들어 난방을 했다. 시골마을에 기와집이 몇 채 되지 않았었다. 부농이 아니고서는 대부분 초가집에서 살았다. 새마을 사업이 한창일 무렵 초가지붕에 슬레이트를 얹어 새롭게 단장을 했다. 매년 지붕을 새로 하는 수고를 덜었지만 기와집처럼 멋스러움은 없었다.

 

 

동쪽에 낮은 산이 있고 기워 집은 서쪽을 바라보고 자리를 잡았다. 그녀는 늴리리 기와집에서 부농의 딸로 태어나 부러울 것이 없었다. 그녀가 어렸을 때는 머슴도 부리고 하루 종일 사람들의 왕래가 끊이지 않았다. 그녀가 세상물정 모를 때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가 터지고 말았다. 백척간두에 내몰린 대한민국은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서울을 탈환할 수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인민군이 후퇴하는 날 행방불명되었다.  

 

딸 하나를 낳고 사라진 아버지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의 어머니는 평생을 딸 하나 만을 바라보며 집안을 지켰다. 그녀의 아버지가 사라진 이후 농사지을 일군이 없어 소작을 주었다. 그녀는 부잣집 딸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마칠 수가 있었다. 도시로 나간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조용히 신부수업에 열중하며 시골처녀로 나이가 들어갔다. 배우고 어여쁜 그녀에게 중매가 들어왔다.

 

 

고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신랑감이 나타났다. 혼사는 빠르게 진행되어 곧바로 식을 올렸다. 대릴 사위로 들어오는 조건이었나 보다. 사랑방에 신혼 방이 꾸며졌다. 신기한 듯 동네사람들은 신혼 방을 엿보기 위하여 기웃거렸다. 둘은 가끔 산책을 하곤 했다. 손을 다정히 잡고 산책하는 모습은 동네 어른들의 눈살을 찌푸렸다. 머지않아 판사가 될 사위는 동네사람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렇게 몇 년을 공부 했지만 사법고시에 번번이 낙방하고 말았다. 시골에서 일도 하지 않고 공부만 하는 모습이 여간 거슬리지 않았다.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마냥 공부만 할 수 있는 입장이 못 되었다. 사법고시를 포기하고 다른 방도를 찾아야 했다. 결국 7급 공무원에 합격하여 군청에서 근무를 했다. 워낙 실력이 우수하여 중앙으로 스카우트되어 떠나고 말았다. 고위 공무원으로 정년퇴임하여 노년을 보내고 있다.

 

 

 

<20대 과부가 되어 여지껏 살고 있는 늴리리 기와집>

 

 

 

탈색한 늴리리 기와집에 그녀의 어머니가 홀로 살고 있다. 허리가 구십 도로 휘어져 코가 땅에 닿을 듯하다. 평생 홀로 살았지만 곱게 늙었다. 이제는 화장실 가는 것조차 힘겨운 나이가 되었다. 늴리리 기와집은 탈색하여 볼품이 없다.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처럼 적막하기만 한 방안에 그녀의 어머니가 힘겨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 20대 꽃다운 나이에 홀로 되어 살아온 그녀의 어머니는 열녀문을 하사해도 누가 뭐라 할 사람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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