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벼랑 끝에 내몰린 가장의 권위
가장의 권위랄 것이 남아 있긴 한가. 전통유교국가인 우리나라는 웃어른께 공경하고 부모에게 효하는 것을 철칙이라 여겼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 그만큼 존경하는 마음이 대단했다. 이렇듯 유교의 가르침을 거역하지 않고 이어온 삶은 법이 없어도 질서를 유지 할 수 있었다. 관습법이 그만큼 탄탄한 역할을 했던 것이다. 가정 역시 아버지의 말이 좀 그릇되어도 수용했다. 형식적인 면이 없지 않았지만 법이 미치지 않는 두메산골에도 큰 다툼 없이 살 수 있었던 것은 유교의 전통을 계승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
소싯적 엄마는 제일 먼저 일어나고 가장 늦게 잠자리에 들었다.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아침준비에 정성을 쏟는 엄마는 늘 바삐 움직였다. 가족구성원 중 서열이 꼴찌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겸상으로 아침을 드시고 형제들은 저만치 물러 앉아 식사를 했다. 엄마는 숭늉을 만들어 대령 하느라 같이 밥을 먹을 수 없었다. 상이 물린 후 남은 반찬과 식은 밥으로 부엌에서 끼니를 해결했다. 남편은 하늘이고 자식들 역시 귀한 존재로 함부로 대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것이 사는 것이고 그것이 진리라 생각하고 묵묵히 이어왔다.
고부간의 갈등이라 해봤자 시어머니의 일방통행으로 끝난다. 며느리 역시 대들지 않았다. 빨래 방망이를 힘차게 내리치는 것으로 울분을 삭였지 내색은 하지 않았다. 죽어도 그 집 귀신이 되라 해서 철저하게 이혼을 막았다. 부모를 모시기 꺼려하고 여차하면 이혼을 서슴지 않는 요즘 여인들과는 사뭇 다르다. 권위가 거꾸로 흐르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먼동이 트였음에도 고요함이 지나쳐 적막감이 흐른다. 아침을 해야 할 아내는 꿈속에서 춤을 추고 있다. 과일 한조각과 미수가루 한잔으로 아침을 대신하고 나와 하루 종일 일을 하다 퇴근해보면 반겨 맞는 사람이 없다. 새벽 일찍 문안인사 하라는 것도 아닌데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대화를 싫어하는 요즘 아이들은 입을 봉하고 고개를 숙일 줄 모른다.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이 손톱만큼이라도 있는 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돈에 노예가 된 현대인들은 오직 돈만을 향하여 내달리고 있다. 아내는 남편이 벌어오는 돈을 한 푼이라도 빼앗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한다. 아이들 역시 하고자 하는 것에 억지를 부리며 떼를 쓴다.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하면 밉지나 않지’ 가장을 중심으로 뺏고 빼앗기는 악순환이 되풀이되다보니 돈의 소유권이 불분명해졌다.
언제부턴가 가정경제를 틀어쥐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아내가 무섭게 느껴진다. 나이 먹음에 따라 힘은 떨어지고 챙겨야 할 일이 많은 남편들은 늘 주눅이 들어 큰소리 한번 못 치는 신세가 되었다. “사랑한 다란 말을 밥 먹듯이 해야 할 뿐만 아니라 끼니는 스스로 해결하는 습관을 들여야 하고 월급은 일원 한 장 오차 없이 마누라 계좌에 입금 할 것이며 틈틈이 마누라 어깨를 주물러 줄줄 아는 서비스 강한 남편이 될 것”을 주문하는 아내는 절대 권력을 내려놓을 기세가 없어 보인다.
가장의 권위가 언제부터 추락한 것인가. 아버지의 세대는 그렇지 않았다. 채 반세기도 되지 않은 세월동안 여권신장이란 미명하에 야금야금 빼앗긴 권위가 이제 벼랑 끝으로 내몰려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해 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이 온다.’고 했는데, 가장의 마음에 꽃피는 봄이 오기나 할까. 비자금 단단히 챙겨 놓지 않으면 거지되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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