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쌩얼천국인 격포해수욕장

말까시 2014. 10. 17. 14:05

 


◇ 쌩얼천국인 격포해수욕장 

 

낯선 곳에서의 잠은 깊이 들 수가 없다. 관광지에 와서 들뜬 마음 또한 잠자는 것을 방해 한다. 변산반도 구석구석을 돌았으니 피곤도 하련만 자다 깨기를 반복했다. 더군다나 가족 모두 뒤 엉켜 자다보니 코고는 소리와 화장실 들락거리는 소음으로 몹시 불편했다. 비몽사몽 하다 보니 먼동이 트기 시작했다. 더 이상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아내어깨를 흔들어 깨웠다. 바닷가 산책을 나가자는 제의에 끄덕한다.  

 

스르륵 문을 열자 비릿한 바다내음이 코끝을 자극한다. 엊저녁 만찬을 즐겼던 흔적들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다. 일찍 일어난 쥔장께서는 술병을 한자리에 모으고 쓰레기를 분리하느라 분주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목례를 하고는 숙소를 빠져 나왔다. 해는 뒷동산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가로등은 꺼진지 오래다. 전구가 선명하게 보인다. 주당들이 짓밟아 버린 골목은 어수선했다. 담배꽁초, 각종 홍보전단지가 뒤엉켜 나뒹굴었다. 휘황찬란했던 어제 밤과는 달리 아침 풍경은 초라했다.

 

해안가에 다다랐다. 격포해수욕장 모래사장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나와 바다풍경을 즐기고 있었다. 새벽임에도 파도는 철석거리며 위풍당당 밀려왔다. 파도를 따라 갔다가 피해 다라는 처자들은 깔깔거리며 비명을 질렀다. 모래사장을 지나자 바위들이 제각각 모양으로 나를 반겼다. 오랜 세월 파도에 깎이고 다듬어져 모난 돌 하나 없었다. 그 위로 무수한 선남선녀들이 새벽 바다를 탐닉하고 있었다.  

 

해변을 거니는 여인들은 하나 같이 모자를 쓰고 있었다. 거의 대부분 남녀 한 쌍으로 다정다감했다. 이른 시각이라 세수를 하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화장은 말할 것도 없다. 분리수거하는 날 아침풍경과 흡사 했다. 채양아래 보여 진 얼굴들은 수녀처럼 수척했다. 처녀총각들은 보이지 않았고 중년의 남녀들만이 풍광을 즐기며 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었다. 너무나 여유롭게 즐기는 사람들은 가족여행을 온 것이 분명했다.  

 

철석거리는 파도를 감상하고 있는데 립스틱 짙게 바른 여인이 빠르게 지나갔다. 새벽 바닷가 산책 나오면서 어느새 화장을 했단 말인가. ‘부지런도 하여라.’ 저만치 한 남자가 따라 오고 있었다. 쌩얼이 대부분인 해변에서 그녀는 유난히 띄었다. 옷차림 역시 화려했다. 사람들이 없는 한적한 곳으로 달려간 그녀는 뒤 따라오던 남자와 손을 잡고 햇살 퍼지는 바위사위로 사라졌다.

  

점점 사람들이 많아졌다. 파도의 세기는 더해 아까의 바위가 물에 잠겨 보이지 않았다. 동쪽 하늘에 해살이 눈부시게 빛났다. 사람들은 저마다 탄성을 자아냈다. 떠오르는 태양에 감동한 남녀들은 부둥켜 않고 펄펄 뛰었다. 복잡한 도시를 등지고 나선 관광객들은 자연이 주는 즐거움을 만끽하느라 한동안 그대로 멈춰있었다.  

 

슬며시 아내의 손을 잡았다. 연애시절처럼 땀은 나지 않았지만 따뜻한 온기가 차가운 바닷바람에 식어버린 가슴을 뜨겁게 달구었다. 아내의 얼굴을 훔쳐보았다. 내천자를 자주 그렸던 아내의 얼굴에 꽃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역시 여행은 즐거운 것인가 보다. 장모 칠순 덕에 무미건조했던 부부생활에 활력소를 불어 넣은 계기가 되었다. 내년에는 더 좋은 곳으로 가자는 의견에 이의를 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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