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살인 사건 현장에 아버지가 있었다.

말까시 2014. 9. 26. 10:55

 

 

◇ 살인사건 현장에 아버지가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일찍 집을 나섰다. 형과 누나는 학교에 가야 한다. 집에는 아무도 없다. 막내며 어린양을 부리며 자란 나는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있다는 것 자체가 엄두가 나지 않았다.난 형을 따라 학교에 갈 수밖에 없었다. 형은 난색을 표했지만 울고 늘어지는 나를 매몰차게 내칠 수는 없었는지 나서라 했다. 나의 간곡한 부탁에 형은 마지못해 학교에 데리고 간 것이다. 

 

집에서 형이 다니는 초등학교는 오리정도 떨어져 있다. 동네서만 놀다가 한 시간 남짓 걸어가는 것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동네 형들은 가는 내내 장난을 치며 걸었다. 덩달아 나도 동참하여 웃고 즐겼다. 무거운 책보를 어깨에 둘러메고 가는 형들은 아침임에도 콧잔등에 땀이 맺혀있었다. 헥헥 거리며 따라간 학교는 운동장이 넓었고 건물이 웅장했다. 

 

학교 정문에 들어서자 나는 원숭이가 되었다. 창피하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이 형 손을 잡고 교실에 들어갔다. 형 친구들은 귀엽게 생겼다며 머리를 쓰다듬고는 빙 둘러 앉아 한참을 머물렀다. 그날은 월요일이라 조례는 하는 날이었다. 교실에 혼자 남아 있을 수 없어 형 뒤를 졸졸 따라갔다.  

 

운동장에 나가보니 학생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앞으로나란히”를 외치는 선생님의 목소리는 격앙되어 있었다. 무서웠다. 형 옆에 바짝 붙어 ‘나란히’를 따라 했다. 줄이 정돈되자 담임선생님이 줄과 줄 사이를 오갔다. 선생님은 나를 보고는 미소를 짓더니만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저만치 걸어갔다. 의례히 있는 일인 것 같았다. 

 

조례가 끝나고 교실로 들어왔다. 책보에는 많은 책들이 있고 도시락이 있었다. 그때는 중학교에 들어가려면 시험을 보아야 했기 때문에 하루 종일 수업을 받아야 했다. 나 역시 비좁은 자리에 같이 앉아 수업을 들었다. 무엇을 공부했는지 모르지만 그때 선생님의 인자하신 모습은 똑똑히 기억난다. 선생님은 우리 동네 뒷산을 넘어 ‘저구실’이란 마을에서 살았다. 학교에 출근하기 위해서는 우리 집 앞을 지나야 한다. 그렇게 하루 종일 수업이 끝나고 정문을 나서는 순간 살인사건이 났다며 웅성웅성 했다.

 

시골에서 살인사건이 났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일직이 그런 사건을 들어보지도 못하고 본적도 없었다. 호기심이 발동한 형들은 사건 현장을 가보자고 했다. 집으로 곧장 가고 싶었지만 따라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사건 현장은 사람들로 바글 바글 했다. 그곳은 학교와 동네의 중간쯤 되는 야산이었다. ‘도대체 이런 곳에서 무슨 살인사건이 났단 말인가.’ 아이들은 사건 가까이 접근할 수 없었다.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데 아버지가 보였다. 

 

아버지는 군복을 입고 있었다. 핏자국이 보였다. ‘이거 큰일 났다. 아버지가 무슨 일을 저지른 것이 아닌가.’ 형과 나는 하얗게 질려 벌벌 떨었다. 아버지는 형과 나를 보더니만 얼른 집에 가라며 손 사례를 쳤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가슴이 떨려 간신히 집에 왔다. 형과 나는 살강을 뒤져 찬밥을 물에 말아 허기를 면했다. 이미 소식을 접한 동네 사람들도 삼삼오오 모여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형과 나는 바깥출입을 삼가고 아버지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날은 조상의 시제가 있는 날이었다. 문중어른들이 선산에 모여 시제를 지내는 중에 할아버지와 큰아버지가 칼을 맞은 것이다. 할아버지는 현장에서 즉사 하고 큰 아버지는 병원에 실려가 목숨을 건졌다. 살인범은 약간의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문중 어른이었다. 무슨 이유로 그런 일을 벌였는지는 모르겠다. 너무나 일찍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얼굴이 가물가물하다. 오색물결 춤추는 늦가을이 되면 생각나는 가슴 아픈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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