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두 얼굴의 여인

말까시 2014. 9. 5. 13:50

 


◇ 두 얼굴의 여인

 

너무나 화창한 날씨에 가슴이 설렌다. 티끌 하나 없이 맑은 날 창문을 살짝 열어 틈이 생기자 쏜살같이 들어온 바람이 종이를 날린다. 점심에 흘렸던 땀방울이 일순간 증발되어 사라졌다. 피부는 뽀송해져 솜털을 꼿꼿하게 세웠다. 난초도 황금연휴를 아는지 물을 달라 아우성이다. 사람들은 평소와 달리 옷차림이 달랐고 미소를 감추느라 입술에 힘이 들어갔다. 두들기는 자판에는 관심이 없는 듯 시선은 자꾸만 창밖을 향한다. 황금연휴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마음속 깊숙이 박수를 쳐본다. 

 

가보자! 고향을 향하여. 오일을 무의미하게 보낼 수는 없는 노릇 알찬 계획을 짜보자. 사전계획이 철두철미하지 못하여 아내의 얼굴에 내천자가 그려진다면 즐거워야 할 명절에 금이 가기 마련이다. 이번 추석은 양가를 방문하여 부모에게 문안인사 드리고 성묘를 하는 것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멋진 프로그램이 아니면 아이들은 좀처럼 동행하지 않으려 한다. 그만큼 머리가 큰 것이다. 아내 역시 눈높이가 높아져 의중을 반영하려면 평소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예전과 달리 어디론가 가고자 대화를 나누다 보면 다투는 일이 잦다. 나들이 계획을 짜는 일이 회사일보다 더 어려운 경우도 있다.  

 

시댁과 친정 가는 길은 극과 극이다. 시댁을 가기로 정해져 있는 날, 일주일 전부터 짜증을 내기 시작한다. 설거지하는 소리도 유난히 크다. 그릇과 그릇이 부딪혀 아프다고 해도 수세미를 박박 문지른다. 화장실이 더럽다고 잔소리를 늘어놓기도 한다. 당일 날 차가 밀릴 것을 대비하여 일찍 출발하자고 하면 피곤하다며 일어날 생각을 않는다. “일어나” 버럭 소리를 지르자 웅크린 몸을 풀며 이불속에서 나온다. 헝클어진 머리에 오만상을 찌푸리며 “아이고 피곤해! 피곤해!”를 연발한다.

 

화장실로 직행한 아내는 공중목욕탕으로 착각한 것인지 나올 생각을 않는다. 머리 말리는 데 한 시간, 화장하는데 한 시간 이렇게 지체하다 보니 해는 중천에 떠 있다. 차가 밀리는 시간을 택하여 출발하고자 계산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신발을 신으면서도 투덜거린다. 신발을 산지가 언젠가 기억도 안 난다며 발길질을 한다. 벽에 걸려 있던 우산이 우르르 떨어진다. 승강기 문이 열리는 순간 휴대폰을 놓고 왔다고 집으로 달려간다. 차라리 점심 먹고 가자는 아이들을 달래 고속도로에 접어들면 화장실이 급하다며 휴게소마다 멈추게 한다. 미치고 팔딱 뛸 일이다.  

 

시댁에 도착해서 수시로 옆구리를 찔러댄다. “친정에 언제 갈겨” 빨리 벗어나고 싶어서일까 차례 상을 물리지도 않았는데 설거지를 서두른다. 아이들도 서둘러 가방을 싸라고 명령하는 아내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정신이 없다. 시댁을 나서는 순간 해살처럼 퍼지는 아내의 얼굴은 미소가 가득하다. 시댁과 친정을 오가는 여인들의 모습이 수시로 변하는 것을 보면 카멜레온보다 변신을 더 잘한다. 두 얼굴의 여인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옛날에는 시집살이가 보통이 아니었다. 빨래터에 가보면 방망이 소리가 요란하다. 서방님 옷 다르고 시어머니 옷 다르다. 평소 쌓인 응어리를 시어머니 옷에 분풀이를 하는 것이다. 시어머니 옷에 구멍이 잘나는 이유가 따로 있다. “어머니 오래오래 사세요.” “나는 너를 내 딸처럼 생각한다.” 말짱 거짓말이다.

 

이번 추석 나들이는 아무 탈 없이 즐거운 명절이 되었으면 하는데 “남자 하기 나름이라”고 하는 여인들의 말이 고깝게 들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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