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남편은 채무가자 아니다.

말까시 2014. 6. 17. 08:52

 

 

◇ 남편은 채무가자 아니다.

 

월급날 조금이라도 늦게 송금하면 바로 카톡이 날아온다.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지 고마워하는 기색이 전혀 없다. 아버지들은 돈주머니를 손에 놓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월급통장을 압류한 여인들은 자기것인양 기세등등하다. “돈 쓸 일은 나날이 증가하는데 늘 한결같다.”면서 투덜거리는 아내는 돈에 걸신들린 것처럼 타령이 심하다. 이제 보내고 싶은 마음 눈곱 많지도 없다.

 

삼겹살이라도 구워 놓고 기다리는 센스를 발휘하면 얼마나 좋을까. 투플러스 꽃등심을 바라는 것도 아닌데 술상한번 차려 반겨 맞은 적이 없다. 의례히 월급날이 되면 송금해주는 것으로 고착화 된 것 같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신혼 때처럼 고분고분할 때가 아니다. 이제 각자 주머니를 채워야 하는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여기서 밀리면 노년에 불쌍해진다.

 

풍족하게 월급을 받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 직장인들은 박봉을 쪼개어 가정을 이끌어 간다. 다행히 맞벌이를 하는 사람들은 형편이 낫다. 외벌이로는 하루살이 인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식한번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삼시세끼 밥만 먹을 수 있어도 행복한 시절이 있었다.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다.

 

70년대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밥만 먹고 못살아’ 열풍이 불기 시작하자 호미와 삽자루를 내팽개치고 도시로 떠났다. 배운 것 없이 시골을 등진 청춘들은 갈 곳 없이 방황하다 공장으로 직행했다. 단순노동에 내몰리어 죽어라 일을 해야만 목구멍에 풀칠할 수 있었다. 거처할 곳도 마땅찮아 자취방에 여럿이 기거할 수밖에 없었다. 청운의 꿈을 꾸고 올라온 도시생활에 적응하기까지는 많은 시행착오와 상당한 시일이 필요했다.

 

하루 종일 중노동에 시달리다 보면 피로가 누적된다. 잠자리라도 편해야 하는데 열악한 주거공간에서 깊은 잠을 잘 수가 없다. 공장이나 집에서나 그렇게 녹록치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시골로 내려간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어떻게든 돈을 벌어 가난에서 벗어나야 했다. 밤낮주야로 이를 악물고 일을 해야 만이 가능한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잔업을 마다 할 수 없는 것이다.

 

워낙 박봉이라 밤늦게까지 잔업을 해도 방세내고 생활비 보태면 남는 것이 없다. 원피스라도 사 입으려면 남보다 두 배는 일을 해야 한다. 추석이나 설 명절에 고향에 가려면 선물도 사고 때때옷이라도 사려면 허리띠를 졸라 매지 않으면 안 된다. 번지르한 겉모습 속에는 고단한 나날 참고 이겨낸 고통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학업을 포기하고 도시로 떠난 청춘남녀들이 있었기에 먹고사는 것에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이제껏 어렵게 번 돈 다갔다 바쳤다. 자산이 얼마인지도 모른다. 일 년에 한번은 결산을 해야 하는데 그것조차도 하지 않는다. 아내 앞으로 개설된 통장이 한 묶음 되는 것 같다. 다 소용없는 일이다. 내 명의로 된 통장 하나 없다면 마누라에게 손을 벌릴 수밖에 없다. 내가 번 돈인데 왜 구걸을 해야 하는가. 노후에 할망구라도 만나 막걸리잔 이라도 비우려면 비자금 두둑이 모아야 놓아야 한다. “여성들이여 남편은 채무자가 아니올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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