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비와 술

말까시 2014. 6. 3. 11:11

 

 

◇ 비와 술

 

창가에 맺힌 물방울이 그대로 매달려 영롱하다. 미끄러져 내려 갈만도 한데 흡착력이 대단하다. 보이지 않는 인력이 물방울을 잡아당겨 추락하는 것을 방지하고 있는 것이다. 모처럼 내리는 빗방울 덕에 시원함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혼탁한 세상이 깨끗해져 머리가 맑다. 먼지가 자욱했던 차량들도 깔끔하게 세척되어 빛난다. 커질 대로 커진 나뭇잎들은 때리는 빗방울에 춤을 춘다. 생명의 물은 생명체에 기를 불어 넣어 성장을 촉진하고 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술이 생각나는 것은 나만의 일이 아니다. 술을 좋아 하는 주당들은 아침부터 입맛을 다시고 있을 것이다. 이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풍습이 아니다. 오랫동안 마시고 마신 끝에 터득한 주당들만의 진리인 것이다. 아무리 변화무쌍한 세상이라 할지라도 비오는 날 술과의 인과관계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천년만년 이어온 술 마시는 습관, 비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영원한 것이다.

 

해가 내리쬐는 날 술을 마시면 바로 취기가 올라 어지럽다. ‘낮술에 취하면 어미애비도 몰라본다.’는 옛말이 있는 것을 보면 꽤나 낮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일이 자주 일어난 것이 아닌가 싶다. 주당들은 마시고 또 마시며 분석을 했을 것이다. 농사짓는 시골 비오는 날이면 딱히 할일이 없다. 그렇다고 대낮부터 방구석에 처박혀 마누라 궁둥이를 두드릴 수는 없는 것이다.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지천에 깔려 있는 푸성귀를 뜯어다 전을 붙여 막걸리를 마셨다. 한두 잔 마셔 보니 비오는 날의 참맛을 알아차린 것이다. 할일이 없는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기온이 내려가 술이 취하는 속도를 느리게 한다는 진리를 알아 차린 것이다. 대낮에 마시는 술맛치고는 시원함과 함께 운치가 더해지니 의례히 술 마시는 날로 정해진 것이다.

 

서민들이야 파전에 막걸리 한잔이면 세상만사 근심걱정 모두 날릴 수 있다. 술이 지닌 마술과도 같은 기이한 작용이다. 이렇게 좋은 술을 한모금도 마시지 못하는 현대판 장애인이 있다. 일 년 내내 맨 정신으로 살다보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소화불량에 편두통으로 고생하는 사람 많이 보아왔다. 맹물파들이 즐겨 마시는 커피가 진정작용이 있다 하지만 술만큼이야 하겠는가. 술의 병폐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보다 좋은 만병통치약은 없는 것 같다.

 

산님들이 많아지면서 서양의 맥주와 비슷한 막걸리는 주말이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막걸리는 성인음료로 거듭나 산행 하는 사람들의 필수품이 된지 오래다. 주전자로 받아먹던 과거와는 달리 플라스틱용기에 담아 파는 막걸리는 용량도 적당해 주당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7080이란 막걸리 전용 술집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소싯적 막걸리를 담아 먹는 것은 법으로 금지 되었다. 하지만 밀주를 담아 먹는 집이 많았다. 양조장에서 받아먹는 막걸리는 너무 싱겁다하여 주당들을 만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담아 먹는 집이 없다. 다양한 술의 제조법이 사라져 아쉽다.

 

꼬드밥을 만들어 누룩과 버무려 물을 붓고 일주일 정도 숙성하면 노랗게 술이 만들어 진다. 맑은 술을 그대로 떠내면 그것이 청주요 약주가 되는 것이다. 밥알이 동동 뜨는 것을 동동주라 하고 마지막 남은 것을 약간의 물을 붓고 걸러낸 것이 우리가 즐겨 마시는 막걸 리가 되는 것이다. 술을 마시지 못하는 어린애들은 술 찌개미를 먹고 비틀거리기도 했다. 오늘따라 아랫목에서 이불을 뒤집어 쓴 채 익어가는 엄마표 동동주가 왜 이렇게 생각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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