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독이 만들어낸 과욕은 고귀한 생명을 앗아갔다.
세상은 꽃들로 도배되어 병풍처럼 아름답다. 때 이른 봄꽃들의 만개는 근심 걱정에 시달린 사람들의 얼굴에 화색을 돌게 하고 미소를 머금게 한다. 잎보다 먼저 나온 꽃들은 희고 붉게 물들어 새싹을 감추어 버렸다. 꽃 속에 파묻힌 사람들은 가지를 당겨 꽃을 따고 그 향기에 취해 어쩔 줄 몰라 한다. 꽃향기는 연인들을 더 가까이 밀착시켰고 식었던 사랑을 뜨겁게 달구었다. 꽃들이 춤추는 화사한 봄날, 뜻하지 않은 친구의 부고에 고향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고향 가는 길은 늘 즐거웠었다. 철따라 변해가는 고향의 하늘과 들녘은 나를 무척이나 흥분시켰고 풍성한 먹을 것을 제공했다. 신선한 공기는 어지러웠던 머리를 맑게 하고 부드럽고 탄력 있는 피부를 만들었다. 동산에 올라 탁 트인 시야는 멋진 그림을 만들어 나를 즐겁게 했다. 상상의 나래는 고향의 아름다움을 끄집어내어 들뜨게 했었는데 오늘따라 문상 가는 길은 망자와 함께 한 일들이 떠올라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무엇이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을까. 무엇이 그를 사랑하는 가족을 버리게 했을까. 평소 지병이 있는 것도 아닌 건장한 친구가 하루아침에 죽음으로 변했다는 것은 필히 사연이 있을 것이다. 들판에 펼쳐진 풍광은 아름다웠지만 느낌이 없었다. 생각은 꼬리를 만들어 길어졌다. 부고장에는 죽음의 사인이 적혀 있지 않다. 가까운 친구에게 물어보았지만 아는 사람이 없었다. 이 세상을 달리 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고향으로 돌린 발걸음은 무겁기가 천근만근이다.
병사나 자연사는 예측할 수 있어 슬픔이 덜하다. 젊은 나이에 갑작스런 죽음은 그를 아는 사람들을 슬프게 하고 통증 없는 고통을 안겨다준다. 그것을 직접 당한 가족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시련이 닥쳐와 그것을 극복하기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린다. 얼마나 세월이 흘러야 상처가 아물까. 평소 살아온 과정이 어떠했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칼로 째인 상처보다는 그 이상 아니 수십 배가 될 것이다.
인간의 욕심은 어디까지 일까. 금은보화가 산더미처럼 쌓여도 하늘높이 또 쌓고 쌓는 것이 인간의 욕망이라 했다. 새벽공기 마시고 나가 부지런히 벌어 쌓은 재물은 독이 될 수 없다. 내가 노력한 만큼 대가를 받아 가족을 위해 쓰고 남은 것 저축하여 재산증식에 도움을 준다면 일등가장으로서 손색이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도를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세상은 좋은 소식보다 나쁜 소식들로 넘쳐난다. 물질문명이 발달하여 살기 좋다고 하나 행복지수는 마이너스가 되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장례식장은 눈물바다였다. 미망인의 얼굴은 눈물범벅이 되어 부어 있었다. 충혈 된 눈은 심적 고통이 엄청났다는 것을 암시했다. 가냘픈 몸은 서서 있기도 힘에 부친 듯 자꾸만 기울어 졌다. 탈진하여 쓰러질까 걱정이 앞섰다. 어떻게 위로를 드려야 할까. 눈물이 앞을 가린 미망인에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조문객을 볼 때마다 쏟아지는 눈물은 훔치고 훔쳐도 흘러 내렸다.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이 없었다.
가족은 함께 살아야 따뜻한 정을 느낄 수가 있다. 부지런히 움직이고 바쁜 사람들은 잡생각 할 겨를이 없다. 세상은 평안한 마음을 가만히 나두지 않는다. 유혹은 조그만 틈만 있어도 비집고 들어와 독버섯처럼 번진다. 고독과 과욕이 손잡고 벌이는 일은 누구도 막을 수가 없다. 이성은 악의감정에 마비되어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고 한곳에 집착하고 만다. 고립은 정말 무서운 흉기나 다름이 없다. 고독이 만들어낸 과욕은 고귀한 생명을 앗아가고 말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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